문정부 ‘찬밥 신세’ 공안검사들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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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친북 정책 기조서 반공주의 부활에 기지개  

“출세하려면 공안으로 가라.” 한때 검찰에서 유행하던 말이 다시 회자될 예정이다. 전두환 정권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당시 검찰 공안부는 검사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던 소위 ‘끗발 있는’ 부서였다. 검찰 최고의 요직으로 꼽히며 주로 동기생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엘리트 검사들이 배치됐다.

하지만 수사 대상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검찰 공안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저항하는 국민을 독재 권력을 대신해 대거 처벌하는 과정에서 ‘정권의 파수꾼’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당시) 검사실 가서 매 맞고 따귀 맞고 잠 못 자고 밤새 수사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공포의 대상’ 검찰 공안부는 문재인 정권에서 철저하게 찬밥 신세였다. 46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2019년 8월 6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및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 ‘대검 공안부’는 ‘대검 공공수사부’로, ‘대검 공안기획관’은 ‘대검 공공수사정책관’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공안부라는 명칭은 1963년 12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감찰·중앙정보부를 담당하는 ‘공안부’가 생기면서 한국 현대사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노동법 관계 사건은 ‘특수부’ 소관이었지만, 이후 공안부는 대공 사건은 물론 노동·학원·선거·집회·시위 사건 등을 자신의 업무로 쓸어담으며 덩치와 영향력을 키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안정국·신공안정국을 주기적으로 선보이며 보수정권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맡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 특수부와 함께 검찰 엘리트 코스로 통했고, 고위직 승진과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됐다.

공안통 전성기는 ‘좌파와의 전쟁’을 벌인 박근혜 정부 때 다시 찾아왔다. 임기 첫해부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공안 트리오’를 내세워 법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한 좌파 색출에 권력기관이 총동원됐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초 실종’ 해프닝까지 총대를 메고 기소하는 것은 공안검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런 위상의 공안부는 2019년 부서 명칭 변경과 함께 공안 업무도 대폭 축소됐다. 공안부의 핵심 업무로 꼽혔던 학원·사회·종교 단체 사건은 업무에서 빠졌다. 대검 공안기획관이 담당했던 공안 정세 분석, 공안 관련 출판물·유인물 분석, 남북교류협력사건수사 기획·지원 업무에서도 손을 뗐다.

검찰 공안의 몰락은 예견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안의 입지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더 초라해졌다.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과거 공안부의 핵심 업무였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 대공 분야 수사는 전체 공안 분야 수사의 0.1% 수준이다. 대공 사건의 빈자리는 선거와 노동사건이 대신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본인이 검찰총장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의 가이드라인 아래 단행된 검찰 고위직 및 중간간부급 인사에서 공안통의 몰락은 두드러졌다. 그가 재임 중 첫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14명 가운데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검사는 한명도 없다. 반면 공안통이 거쳐 가는 핵심 요직인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 부임했다.

당시 공안검사들은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만큼 바닥을 친 적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후배가 ‘어디를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공안은 가지 말라고 한다”며 당시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애초 공안부를 공공수사부가 아닌 ‘공익부’로 명칭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땐 반발도 거셌다. “우리가 옷 벗으면 소집해제(공익근무요원에 해당) 되는 거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고 한다.

공안검사들은 일부 선배들의 잘못으로 인해 공안부 전체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싸잡아 매도당한다며 억울해했다. 공안통인 현직 검찰 간부는 “공안검사 대부분은 헌법 최고 가치인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겠다는 자세로 일해왔다”며 “일부 잘못된 검사들이 있었지만 그걸 공안검사 전체가 그런 것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 vs “정권의 하수인” 

공안검사 시초로 꼽히는 故 오제도 변호사. [중앙포토]

공안검사 시초로 꼽히는 故 오제도 변호사. 

검찰 공안부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에 따라 국가 안보와 관련한 대공·테러 사건, 선거와 노동 관련 사건 등을 전담해온 부서다. 대검 공안부(초대부장 설동훈)가 탄생한 것은 1973년 1월 25일. 그러나 그보다 12년 전인 1961년 4월 발족한 중앙수사국이 공안분야 업무까지 처리했던 만큼 법조계에선 이를 사실상 공안부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물론 중앙수사국 발족 이전에도 공안 업무는 있었다. 법조계에선 ‘공안검사’의 시초로 고 오제도 변호사를 꼽는다. 2001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오 변호사는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리는 여간첩 김수임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방 이후 간첩 색출에 명성을 떨쳐온 오 변호사는 당시 북한의 저격대상 1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8년엔 북에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의형제를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까지 주로 대공 사건을 처리하던 검찰 공안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이후엔 시국사건이 급증하며 선거·노동·학원·집회·시위 사건까지 모두 맡게 됐다. 정권의 정통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당시 독재권력을 대신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 국민을 대거 사법 처리했다는 오명도 들었다. 대표적으로 1967년 동백림(東伯林)사건, 1971년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사건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권위주의 정권 당시 공안검사들은 국가보다 정권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정치검찰’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20대 대선 다음날 10일,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한 공안(公安) 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선 결과에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친중, 친북 성향의 문재인 정권 탓에 이들은 검찰에 있을 때만 해도 ‘찬밥’ 취급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공 등 공안부 기능은 대폭 축소됐고 공안통들이 간부 승진에서 물을 먹는 등 푸대접을 받으면서 사실상 ‘기피 부서’가 돼 버렸다. 떠밀리듯 검찰 조직을 떠난 공안 검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공안 기능이 강화되면서 뜻하지 않게 ‘귀한 몸’이 된 것을 두고 한 법조인은 “문재인 정부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속히 진전되자 기존 공안통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대검은 공공부 명칭 선정 이유에 대해 “공익은 사회 일반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상징하는 용어이고 안보·선거 업무 전반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적합하다.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변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검은 일선 공안검사들의 거부감을 달래기 위해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설, 존 롤스의 공익 개념까지 인용했다. 특히 “선거·노동 사건을 공안적 시각에서 편향되게 처리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불식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동 사건을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와 이들의 사회적 기본권 보장’으로 규정하는 등 부서 명칭뿐만 아니라 업무 성격에도 ‘대전환’을 시도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몰려드는 일감이 많아 겹경사를 맞고 있다.  지난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에 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진 반면, 법조문에 ‘적용 범위’ 등이 애매하게 규정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은 너도나도 법률 전문가들에게 달려가 법령 해석과 처벌 예방 등을 자문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설업과 제조업체들의 경우, 대기업을 제외하면 법무팀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서초동 공안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예상치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안부는 2019년 직제 개편 이후 산업재해 등 노동 분야 사건도 담당하게 돼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한 이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사상 첫 검찰총장의 대통령 시대에 ‘공안 검사’들의 재등장으로 가뜩이나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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