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슬립테크 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숙면을 돕는 산업이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수면의 상태를 측정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시키는 전통적 방법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관련 산업도 커지는 것이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슬립테크(sleep-tech·잠과 기술의 합성어) 관련 부스를 마련하는 등 글로벌 IT기업들 다수가 참전하면서 각축전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빅테크뿐 아니라 신기술을 선보이는 크고 작은 스타트업 등이 뛰어든 슬립테크 시장을 조명했다.
[Interview] 토비아스 실버잔 맥킨지 베를린사무소 파트너
“슬립테크(Sleep-Tech・숙면 기술) 산업은 수면과 관련한 인류의 건강과 웰빙을 이해하고, 관리하고, 향상하는 도구로서 상당한 성장 가능성을 갖는다.”
토비아스 실버잔(Tobias Silberzahn) 맥킨지 베를린사무소 파트너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슬립테크의 미래를 이렇게 낙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 유행병’이라고 선언했다. 선진국 성인 세 명 중 두 명은 수면 시간이 하루 8시간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성인의 약 75%가 수면 장애를 겪는다는 분석도 있다.
실버잔 파트너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숙면: 기술을 통한 수면 부족 감염병 해결(Sleep on it: Addressing the sleep-loss epidemic through technology)’에서 수면 부족은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독일에선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지출이 매년 600억달러(약 86조400억원)에 이른다. 호주에서는 수면 장애로 발생하는 직간접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 부족이 근로자의 사망률을 높이거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수면 산업은 약 20조원, 일본은 6조원 정도 규모다. 실버잔 파트너는 “슬립테크는 아직 초기 단계로 신뢰성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슬립테크 솔루션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수면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수면 부족은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세계수면학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5%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수면 부족은 알츠하이머나 불안, 치매, 우울증,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을 유발하며, 인지 기능과 주의력, 심지어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면 장애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는데.
“수면 부족은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노동력 감소의 원인이 된다. 수면 부족은 사망 확률을 높이고, 결근과 근무 태만 가능성을 키운다. 이런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5개국(미국·캐나다·영국·독일·일본) 기준,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매년 약 6800억달러(약 97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수면 부족은 생산성 저하로도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수면 장애로 인한 근로자의 결근 시간 합계가 연 1000만 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480만 시간, 독일은 170만 시간으로 조사됐다. 업무 수행 능력이 악화할 뿐만 아니라 고용주가 직원 건강 관리에 쓰는 비용도 증가시킨다. 미국 기업의 경우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감소로 발생하는 손실이 근로자 1인당 연평균 1300~3000달러(약 180만~43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슬립테크 산업이 성장세인 것이 맞나.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아직 큰 진척을 이루지 못한 분야 중 하나가 수면 산업이다. 다만 최근 들어 수면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수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웨어러블 기기 같은 기술 솔루션은 전 세계 수면 부족 문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년간 미국 슬립테크 특허 수는 연평균 12% 증가했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건강과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슬립테크 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슬립테크가 수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슬립테크 기기는 인구 통계학, 사회·경제학,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면을 연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는 취침 시간 같은 수면 행위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유용하다. 이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수면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원격 모니터링은 수면을 연구하는 의료진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구 통계학, 사회 경제 및 라이프스타일 요인 및 건강과 노화 등 다양한 지표와 수면의 관계를 조사하고, 수면 문제를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헬스케어 기업은 고객의 더 나은 수면 습관 형성을 위해 행동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슬립테크 기기로 얻은 수면 행동 데이터는 인지행동치료(CBT) 같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도움 될 수 있다.”
슬립테크 실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헬스케어 기술과 비교하면 슬립테크는 확실히 시작 단계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림 웽 콩 듀크-싱가포르국립대 의과대 박사는 ‘수면 장애 여부를 밝히는 데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정말 유용한지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심방세동(심방 잔떨림·심방에서 발생하는 빠른 맥의 형태로 불규칙한 맥박을 일으키는 부정맥 질환) 감지 목적으로 스마트 워치 사용을 승인한 배경에는 심혈관계 의학에 대한 대규모 임상 연구 결과가 근거가 됐다며, 수면 장애 영역도 임상 시험을 통해 웨어러블 기기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립테크 관련 디지털 치료제도 개발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원격 진료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분야의 지속 성장은 가능할까.
”수면, 영양, 스트레스 관리는 건강과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다. 사람들이 더 나은 수면, 영양,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건강과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치료제는 그런 행동 변화를 돕는 도구다. 사용자의 신체 활동을 돕거나 스트레스나 불안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수면 개선을 위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슬립테크 역시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미 슬립테크와 관련한 디지털 의료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원격 의료, 디지털 의료 보험, 디지털 약국 등 기존 의료 서비스 채널을 넘어 광범위한 플랫폼 기반 서비스를 제공한다. 슬립테크 기업 역시 이런 생태계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슬립테크 산업 전망은.
”최근 시장 조사에 따르면, 세계 슬립테크 시장 규모는 2019년 110억달러(약 15조7000억원)에서 2026년 약 320억달러(약 45조8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슬립테크 솔루션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모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고용주는 근로자의 수면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국가 역시 국민의 건강, 복지 개선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슬립테크는 아직 초기 단계로, 그 효과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슬립테크 산업은 수면과 관련한 인류의 건강과 웰빙을 이해하고, 관리하고, 향상하는 도구로서 성장 가능성이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