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의 그림자, 임광호의 마지막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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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4편: 중앙일보 ‘총대’의 그림자, 임광호의 마지막 가을

임 사장은 고개를 들어 하늘과 나무를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밟는 고국의 10월, 남양주의 가을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흐렸다. 캘리포니아의 쨍한 햇빛 아래서도, 그는 주로 골프장에서만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이 낯선 건물 뒤편, 주차장 끝에 서 있는 키 작은 나무 위로 흰 줄 하나가 바람에 얇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앙일보에 입사하던 날, “재벌 신문사에 붙었다”는 주변의 부러움, 재무팀장과 재무기획실장을 거쳐 제이콘텐트리 대표까지 올랐던 일, 그리고 홍석현 회장의 장남 홍정도를 만나 “미주 지사장으로 가달라”는 제안을 받던 순간들이 짧은 필름처럼 스쳐갔다. 

이틀 뒤면 딸의 결혼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날, 신부 대기실 앞에서 딸의 손을 꼭 잡아줘야 할 아버지는 여기, 한국의 변두리 나무 아래 서 있었다. ‘그날 딸아이 손을 잡고 입장하는 장면’을 떠올리자, 숫자만 만지는 직업이라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소리를 평생 들어온 그에게서, 너무도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여보, 미안해”로 시작하는 메시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화면을 두 번이나 내려봐야할 만큼 길었던, 그의 마지막 유언. 곧이어 발이 허공으로 뜨고,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얇게 퍼져나갔다.

2019년 10월 6일 오후 5시 56분,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건물 뒤편 나무에서, 전 미주 중앙일보 사장 임광호가 목을 맨 채 발견됐다는 것이 경찰의 공식 발표다. 실종 신고는 전날 밤 가족이 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끝에 시신이 발견됐고, 경찰은 “타살 흔적이 없고 가족·지인에게 남긴 문자메시지 정황으로 볼 때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미주 중앙일보 지면에는 단 네 줄짜리 부고가 실렸다.

“임광호(60) LA 중앙일보 고문 별세.”

전 미주 중앙일보 사장이자 LA 중앙일보 고문이었던 그의 죽음을, 회사는 그 정도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같은시기 한국일보 등 경쟁 매체가 “딸 결혼식 참석차 귀국, 결혼을 이틀 앞두고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사망경위를 보도하자, 중앙일보 직원들과 그를 알고 있던 지인들의 충격은 더 컸다. 

그보다 10년 전인 2009년, 또 다른 전 미주 중앙일보 박인택 사장이 본사 감사 직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던 이들에겐, “10년 새 미주 중앙일보 사장 두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내려쳤다.

두 번의 죽음. 한 조직. 그리고 그 사이의 10년. 이 연재의 네 번째 이야기는, 그 공백 속에 숨어 있는 말한마디 ― ‘총대’ ― 를 따라가 본다.

룸살롱에서 나온  마디, “형님회사가 총대를 매라네요

기자는 미주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다. 같은 조직에서 10년 사이 사장 두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은 단순한 ‘옛 직장’에 대한 애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구조조정 현장에서 본사의 강압과 폭압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 박인택 사장의 사망 전후 사건을 중앙일보 내부에서 눈앞에서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임광호 전 사장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기자는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십수 명의 소개 끝에만난 사람이 ‘J’였다. 한인은행 이사였던 J는 임 사장과 자주 골프를 치던 사이였다. “입은 무겁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라 특히 한인사회에서 낯을 심하게 가리던 임 사장과 잘 맞았다.

J의 기억 속 마지막 만남은, 임 사장이 한국행을 앞두고 “형님, 술 한 잔 하시죠”라며 전화를 해 온 날이었다.

“중앙일보 전 사장을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면 괜한 오해도 살 수 있으니까, 한인타운 8가 쪽 룸살롱에서보자고 했지요. 그날은 ‘오늘은 그냥 얘기만 하자’고 해서 도우미도 안 부르고 둘이서만 앉았습니다.”

룸살롱 조명 아래 임 사장의 얼굴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마르고 창백해 보였다.

“임 사장, 살이 많이 빠졌네.”

“혼자 있다 보니 밥을 자주 거르게 되네요.”

아내는 집안일로 한국에 나가 있고, 그는 LA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조니워커 블루가 반쯤 비워질 즈음, 그의 볼에도 취기가 올라왔다. 그때 임 사장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고 J는 기억했다.

“형님, 회사에서 총대를 매라네요.”

“무슨 총대야. 사장 자리에서 내려와 고문으로 있는 사람이 뭘 또 메.”

“원래는 박장희가 하고 갔어야 하는데… 갑자기 본사 대표가 1월 초에 사임하는 바람에, 한국에 다시들어가게 됐지요. 그 뒤로는 본사에서 제게 일을 맡아서 진행하라고 하네요.”

여기서 말하는 박장희는 2017년 미주 중앙일보 사장으로 부임했다가 2019년 1월 1일자로 본사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발령난 인물이다. 그 직전에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를 맡았던 인물이 바로 홍석현 회장의 장남, 홍정도였다. 홍정도는 2014년 말 중앙일보와 JTBC 공동대표이사로 올라선 뒤 그룹의 ‘콘텐츠·방송 중심’ 재편을 진두지휘하던 오너 3세였다. 홍정도는 2018년 11월에 반용음 대표를 선임했다가 충돌이 생기자 40일만에 미주 중앙일보에 나가있던 박장희를 불러들였다.

2019년 미주 법인에 보낸 ‘JD라인’ 박장희는 2019년 말까지 미주 중앙일보에서 할일을 마쳐야 했는데, 갑작스런 본사 대표 임명으로 급거 귀국해야 했고 미주 중앙일보 사장을 박장희에 물려주고 고문으로 있던 임광호 전 사장이 이어 ‘총대’를 넘겨받게 됐다.

J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회사에서 ‘할 만하고 믿을 만하니까 맡기는 거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했어요. 그런데 임 사장은 ‘이번 총대는 다르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구조조정 때는 욕을 먹더라도 숫자와 서류 안에서 설명이 되지만, 이번 일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거였죠.”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J는 한동안 말을 멈췄다.

“임 사장이 말한 총대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었어요. 그 부분은… 기사에 쓰시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임 사장을 만난 마지막 날이었어요. ‘한국 다녀와서 형님이랑 골프 한 번 치자’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제가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임 사장은 그날 평소보다 훨씬 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 밤 11시를 넘겨서야 J가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집으로 돌려보냈다. J가 말하는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많은 총대”가 무엇이었는지는, 이때까지만 해도 베일에 싸여있다.

1984 입사, “재무 라인으로 올라온 사람

임광호의 이력은 ‘전형적인 중앙 재무 라인’이었다. 중앙일보에 1984년 입사한 그는 재무팀장, 재무기획실장을 거쳐 그룹 지주격 회사였던 제이콘텐트리(현 SLL중앙)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재무·기획 라인은 홍석현 회장의 그룹 운영을 뒷받침하는 심장부였다. 홍 회장의 ‘신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이 이 라인을 거쳐 올라왔고, 그중 일부는 JTBC,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콘텐트리중앙 등의 대표로 발탁됐지만 언제부터 내리막을 탔다.

2014년 12월, 홍정도가 중앙일보와 JTBC 공동대표이사로 선임되던 시점에, 임광호는 미주 중앙일보 법인 사장겸 LA 사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당시 미주 중앙일보 사장 자리는 중앙그룹내에선 은퇴 직전 마지막 보직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의 인맥과 사회적 기반을 정리하고 LA 한인 커뮤니티로 넘어오는 일은, 50대 후반~60대 초반 한국인 남성에게 사실상 ‘마지막 근무지’라는 의미를 가졌다. 

30-40대 직장인에게 미국 발령은 자녀들이 어릴 때라면 교육 환경을 이유로 의미를 둘 수도 있었지만, 이미 자식이 장성한 나이에 은퇴를 앞두고 본사를 떠나 한인 교포사회로 가는 미국행은, “조용히 물러나라”거나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고 조직 생명을 연장하라”는 신호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임광호 미주 지사장 발령은 그의 이력 중 홍석현 회장의 총대를 제대로 매지 못한 문책성 발령의 마지막 귀착지였다.

2008년 당시 임광호 중앙일보 재무이사는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지분을 사들인 돈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나왔다는 진술을 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8년 6월 21일 MBC 뉴스 방송 캡쳐

임광호 사장이 중앙일보에서 실패했던 ‘첫번째 총대’는 무엇이었나.

2008년으로 돌아가면 임광호 전 사장은 중앙일보 재무이사였다. 중앙일보의 모든 자금 관리와 흐름을 책임지고 있는 중책이었다. 삼성 특검에서 삼성 3차 공판에 불려나갔다. 언론 기자 수십여명이 법원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지난 1998년 12월, 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들이 가진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했고, 이를 두고 삼성은 중앙일보가 계열 분리됐다고 선언했다.

삼성 특검은 홍회장의 지분 매입을 위장 계열분리로 보니 조사 중이었고 출석한 임광호 재무이사에게 위증땐 감옥행이라고 압박했다.

당시 특검에서 중앙일보 임광호 재무이사는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141억원을 증여받아 삼성 계열사들이 가진 중앙일보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드는 자금을 충당한 것이 맞냐?”는 특검측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임광호 이사는 특검에서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지분을 사들인 돈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나왔다고 진술한 것이었다. 그 파급은 폭탄급이었다.

임 재무이사의 진술처럼 이 돈이 삼성 거라면 중앙일보가 삼성에서 계열분리됐다는 주장은 거짓이고 또 무혐의 결론을 내렸던 특검수사도 잘못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 재무이사의 진술대로 홍 회장이 삼성에서 돈을 받아 중앙일보 지분을 사들인 것이라면, 삼성이 홍 회장에게 중앙일보 지분을 임시로 맡겨놓은 ‘위장 계열 분리’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임 재무이사의 특검 진술의 홍석현 회장이 재정 출처에 대해 오락가락 얘기하던 진술 신빙성에 대해 큰 타격을 가했다. 중앙일보에도 뜨거운 비난이 쏟아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중앙일보 자금을 관리하던 재무이사의 직접적 진술은 삼성과 중앙일보 위장 계열 분리 의혹이란 뜨거운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불똥은 삼성으로도 튀었다. 삼성 변호인측은 급히 기자 회견을 갖고 오히려 홍회장을 대신해 “삼성에서 증여받은 돈이 아니라, 홍 회장이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비서실에서 보관했던 돈”이라고 반박했다.

돈의 소유권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특검 조사 당시 홍석현 회장의 진술도 일관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삼성 계열 분리 자금출처에 대해 오락가락 진술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츨처 2008년 6월 21일 MBC 방송 캡처.

특검 관계자는 “홍 회장이 어떤 때는 대출받은 돈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가족 재산으로 지분을 매입했다”는 식으로 진술이
오락가락 했으며, 구체적으로 신문하면 “더이상은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삼성 변호인단의 강력한 방어 끝에 특검은 지난 4월 수사 결과 발표때 삼성측의 진술을 토대로 ‘중앙일보의 위장 계열 분리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고 막을 내렸다.

임광호 재무이사는 이 특검 진술이후 조직내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홍 회장의 가장 믿음직한 금고지기에서 본인이 살려고 홍 회장과 중앙일보 조직을 벼랑 끝으로 몬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임 이사는 중앙일보에서 바로 내보낼 수 없는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누구보다 중앙일보와 삼성, 홍 회장의 자금 흐름을 잘 알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무작정 내보냈다간 후폭풍이 우려됐다. 홍석현 회장은 임 이사를 계열사 대표로 내려 보냈고, 홍정도 부회장이 임 대표를 미주 중앙일보 지사장으로 발령낸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보수 3대 일간지 ‘조중동’이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출범시키며 방송 광고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종편 투자로 인한 차입 부담과 종이신문 매출 감소가 겹치면서 재무 구조는 빠듯해졌다. 미국에서도 2010년대 들어 지역·중앙 신문사의 광고 수입이 2000년대 초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페이스북·구글 등 플랫폼으로 광고비가 이동하면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부동산 매각이 이어졌다.

미주 중앙일보 법인은 오랫동안 그룹 내 ‘무풍지대’였다. 한국 본사가 종이신문 광고 감소와 JTBC 출범 이후 대규모 투자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시기에도, 미주 법인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구조조정에서 비껴나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들어 한국과 미국 모두 신문 광고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신문사들의 만성적자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됐다.

그 여파는 LA 윌셔플레이스에 자리한 미주 중앙일보 사옥 빌딩에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임광호 사장에게 미주 중앙일보는 마지막 임지였다. 조직내 생명선을 연장하다 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우연한 기회’라도 생길 수 있었다. 다른 미디어 계열이 아니라고 중소기업의 대표 정도. 그까지 살아남으려면 조직이 원하는 두가지를 해내야 했다.

하나는 미주 법인의 구조조정, 다른 하나는 LA·뉴욕 등 미주 중앙일보가 보유한 부동산의 매각 혹은 개발이었다.

구조조정, ‘부활절 대학살극’, 그리고 남은 상처

미주 본사 사장으로 부임한 뒤, 임광호는 가장 먼저 재무상 구조조정을 착수했다. 전미주 지사와 로컬지국들을 통틀어 40여 명의 인력이 잘려 나갔다. 처음 내부에서 제시한 구조조정 규모는 10명 수준이었지만, 서울 본사에서 추가 감원을 요구하면서 숫자가 네 배로 부풀었다는 것이 당시 직원들의 증언이다.

해고 통보가 이뤄진 날은 부활절 다음 날이었다. 한인 사회에서는 이 날을 두고 “부활절 대학살극”이라는거친 표현까지 나왔다. 잘려 나간 지역 사장과 국장, 편집 책임자들은 이후에도 수년간 “왜 일 잘하던 사람을잘랐느냐”며 임광호를 향해 공개적으로, 혹은 술자리에서 집요하게 비난했다.

J는 그날 술자리에서 임 사장이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회사에서 지시한 대로 숫자만 보고 자른 거예요. 본사에서 ‘해외 법인 인건비 줄여야 한다’고 하면, 그게답이죠. 그런데 해고 통보하고 나면 그 사람들 원망은 다 제가 받잖아요. 2년이 지났는데도 밖에 나가면 ‘왜 그 사람 잘랐냐’는 이야기를 계속 듣습니다.”

임광호는 술이 센 편은 아니었지만, 양주를 빠른 속도로 비우곤 했다. 말수가 적다가도 스트레이트로 몇 잔이지나가면 속 얘기를 털어놓는 타입이었다.

J는 “그게 사장의 숙명 아니냐”고 말했지만, 임광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땐 그래도 숫자와 성적표 안에서 설명이라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매야 할 총대는,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사람 하나 날려보내고 회사는 빠져나가는 식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구체적인 사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여러 취재원들은 “미주 법인이 보유한 LA·뉴욕사옥 매각과, 그룹 차원의 상장·투자 전략이 얽힌 사안이었다”는 점만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만성적자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중앙그룹은 미주 중앙일보 뉴욕과 LA 사옥을 매각하기 위해 임광호, 박장희 대표를 순차적으로 발령을 냈다. 사진은 LA중앙일보 사옥. 출처: KTR.

중앙그룹의 그리고 SLL중앙이라는 퍼즐

임광호가 미주 사장으로 일하던 2014~2016년, 한국과 미국의 정치·경제 환경은 격변기였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청년실업 문제로 ‘위기의 한국 경제’ 담론이이어졌고,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정권이 붕괴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과 중앙일보 그룹의 관계는 광고중단 등 악화일로로 접어들었다.

미국에서는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글로벌 교역 질서가 뒤흔들리고,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 수출 기업과 금융시장 역시 요동쳤다.

이 격변의 시기,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3대 신문사의 재무구조는 신문 광고 감소와 종편·콘텐츠 투자 확대로 점점 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중앙그룹은 특히 JTBC와 드라마·영화 제작, OTT 콘텐츠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종이신문과 온라인 ‘조인스’ 수익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지점에 이르자, 그룹은 자산 매각과 상장·프리 IPO를통해 자금을 수혈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제이콘텐트리(콘텐트리중앙)를 모체로 한 ‘SLL중앙’이다. SLL중앙은 JTBC 스튜디오, 드라마·예능·디지털 콘텐츠 제작사를 묶은 통합 콘텐츠 법인으로, 2021년 약 4,000억 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를 진행했다.  당초 코스피 상장까지 이어가 ‘JTBC·콘텐츠 제국’의 자금줄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상장 일정은 여러 차례 미뤄졌고, 그룹 재무에는 그만큼 압박이 남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자금줄로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은 ‘해외 부동산’이었다. 서울 서소문 옛중앙일보 빌딩이 재개발을 앞두고 대형 금융·보험사들의 새 둥지로 변신하고 있듯, LA·뉴욕의 중앙일보 사옥 역시 부동산 경기가 과열된 시기에 매각하면 큰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알짜’였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임광호의 죽음과 관련해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는 ‘부동산’과 ‘상장’이다.

“홍정도 체제에서 그룹 전체가 콘텐츠·방송 중심으로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었습니다. SLL중앙 프리 IPO, 이후상장까지 성공시키려면, 재무제표 곳곳에서 현금을 짜내야 했어요. 미주 법인의 인건비와 부동산은 그중비교적 손댈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고요.” (전 중앙그룹 관계자)

물론, 이런 구조적 압박이 곧바로 한 사람의 죽음과 단선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임광호의 죽음에 대해법원이 “특정 경영 지시와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적도 없다.

그러나 숫자와 보고서, 메일과 문서로만 남아 있는 ‘그 시기 결정들’의 무게가 실제 사람의 어깨 위에올라앉을 때, 그 책임감과 압박감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번의 자살 없는 회사남은 의문

임광호의 사망 소식이 미주 직원들에게 알려진 건, 한국 언론의 짧은 속보와 부고 기사 덕분이었다. 미주중앙일보 내부 단체 채팅방과 편집국에서는 “함께 일하던 고문이 왜…딸 결혼 이틀 전까지 극단적 선택을…”라는 탄식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앙일보 본사와 미주 법인 공식 채널에서 나온 반응은 거의 없었다. 공개 조문이나 장례 지원에대한 안내, 사내 공지 등도 최소한에 그쳤다는 것이 당시 직원들의 기억이다.

앞서 2009년 박인택 전 미주 사장이 본사 감사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에도, 회사는 유사한 방식으로 조용히 사건을 지나갔다. “본사의 강압적 감사”와 “사장의 자살”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 어떤 대화가오갔는지, 어떤 문서가 오르내렸는지는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지만 당시 기자로 근무했던 필자는 본사 감사팀의 행태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바다. 

임광호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 기록에는 “타살 흔적 없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이라는 한줄이 남았고,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는 “몸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당뇨가 있었다더라”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마지막 술자리에서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큰 총대” 이야기를 들었던 J에게,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우울이나 건강 악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은행이사 J가 기자에게 말하기 주저했던 부분에는 임 사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임 사장은 그 총대를 안 매면 중앙일보에서 임 사장을 법적 처리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고 했어요. 한국 콘도회사의 미국 분양을 미주 중앙일보 사장 시절에 전폭적으로 도와준 적이 있는데 한국 건설회사서 고맙다며 임의로 콘도 한채를 임 사장 명의로 넣었는데, 그걸 본사에서 알게돼 감사 중이라고 했지요. 총대를 안매면 배임, 횡령죄에 한국서 얼굴도 못들고 다니게 해주겠다며 협박을 말이죠. 한번 총대 잘못 매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인데, 이번 총대를 안 매면 한국사회에서 아주 매장시킬 거라면서….”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남양주 어느 나무 아래에 걸려 있다.

홍정도의 지시 임광호의 죽음우리가 말할  있는 것과 말할  없는 

이 연재는 ‘노무현 죽이기’ 보도의 배후를 추적하며, 중앙그룹과 홍정도라는 오너 3세의 권력 행사를 짚어보고 있다. 4편에 이르러, 우리는 미국 미주 중앙일보라는 ‘변두리 무대’에서 벌어진 두 번의 사장 자살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두 사건을 단선적으로 묶어 “홍정도의 지시가 곧 임광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판단은 오로지 수사와 재판, 공식 기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최소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있다.

  • 임광호는 중앙그룹 내 핵심 재무 라인을 거친 인물로, 홍정도 체제 출범과 함께 미주 법인 인력 구조조정과 부동산 매각이라는 ‘총대’를 맡았다. 
  •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까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총대”에 대해 가까운 지인에게 토로했다는 증언이 있다.
  • 같은 시기 중앙그룹은 SLL중앙 프리 IPO와 상장 준비, 국내외 부동산 매각 등으로 자금을 총동원하는 국면에 있었다. 

이 사실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임광호 사장이 마지막으로 올려다봤을 남양주의 잿빛 하늘과, 그 위에 걸린 희고 가는 줄. 그 장면을 떠올릴때마다, 기자의 머릿속에는 룸살롱의 낮은 조명 아래에서 J씨에게 중얼거리던 그의 한 마디가 겹쳐 떠오른다.

“형님, 회사에서 총대를 매라네요. 이번 총대는…좀 다르네요.”

다음 편에서는, LA와 뉴욕 미주 중앙일보 사옥 매각 과정과, 그 속에서 임광호가 어떤 역할과 압박 속에 놓여있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

최상태 기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steven@sundaynewsusa.com

본 기사는 미주 중앙일보·JTBC 전·현직 직원 및 관계자 제보를 바탕으로 한 극화 르포입니다. 현장감을 위해 일부 대화·상황을 재구성했으며, 일부 내용은 제보자의 기억과 인상에 기초한 추정이 포함돼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확인 가능한 오류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확인 즉시 정정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비하인드 히스토리>

<1> 중앙일보 홍정도는 왜 노무현의 심장을 겨눴나

<2> 홍진기는 왜 시위대를 쏘았나, 중앙일보, 그의 유산

<3> 홍정도의 야심: 노무현 잡으려면 노건호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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