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사법리스크에 정부 무능때릴 호기 놓쳐
민주당, 검찰수사 반발해도 국민 절반이 ‘적법’
민주당 출신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당 신년 인사 자리에서 이 대표 면전에서 ‘교토삼굴(狡兎三窟)’을 강조했다. 지혜로운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위험한 시기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이 대표의 사법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 이 대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당이 뿌리째 흔들리는 파장이 예상되므로 합리적인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노정객의 직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본격적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당 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 검찰 수사에 대해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극도의 비난을 가했다. 윤 정부를 ‘뻔대기’라고 비판했는데 ‘뻔뻔하고, 대책 없고,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의혹이 있다면 제대로 수사받고 자신의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서 지난 12월 30~31일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검찰이 이 대표를 소환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전체 응답 결과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라는 의견이 38.3%로 나타났다.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이 54.5%로 절반을 넘겼다. 특히 20대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이 61.6%로 절반을 훌쩍 넘긴 수치를 보였다.
이 대표의 수사 결과에 따라 20대의 민심이 윤 대통령 쪽으로 향할지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30대에서는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라는 의견과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이 팽팽했지만 지방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던 서울 및 인천·경기 수도권과 중도층에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평가가 더 높게 나타났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면서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세 갈래로 나뉜다. 우선 ‘정치적인 대응에 대한 평가’다.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수사와 의혹 제기를 현 정부의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의 대응은 국민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법적 대응에 대한 평가’다. 성남FC 후원금 ‘제3자 뇌물 제공 혐의’, 대장동 부동산 개발 특혜 의혹 그리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적 대응은 근거 자료에 기반해야 한다. 검찰은 창이고 이 대표는 방패의 위치에 있다. 창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단단한 근거와 논리로 대응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초기 전황은 이 대표에게 부담이다. 자신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실장이 구속된 상태다. 여기에 쌍방울과 경기도의 연결고리로 주목받고 있는 아태평화교류협회 의혹에 더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까지 구속돼 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관련 있는 최우향 전 쌍방울 부회장과 이한성 화천대유 공동 대표도 구속됐다. 김만배씨는 검찰의 집중적인 수사를 받고 있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그리고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적 공방에서 이 대표는 사면초가다. 이 대표의 대응 중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정당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이다. 당 내외에서 이 대표에 대한 쓴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장 큰 이유다.
민주당, ”구원투수를 찾아라”
‘검증’ 이낙연 vs ‘친문 구심’ 김경수 저울질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봤다. 지난해 11월 1~3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4%, 국민의힘 지지율은 32%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 조사인 올해 1월 3~5일 조사에서 두 정당의 지지율은 역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35%, 민주당 지지율이 33%로 나왔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국민의힘 지지율까지 동반 상승한 탓에 집권여당의 대야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대표가 임기를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8월 2~4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9%까지 올라갔는데 임기 시작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당 지지율이 31%까지 고꾸라졌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도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너무 높아 중도층 일부가 이탈하거나 2030·MZ세대가 유입되지 않았던 탓이다.
새해 민주당은 두 가지 위기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나는 이 대표의 의혹이 정치적 공세가 아니라 현실적인 범죄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당에선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당을 구원할 투수 등판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는 사법적인 국면 전개와 상관없이 국민 여론의 급격한 변화 발생시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전화면접조사 기준으로 25% 미만으로 내려가거나 국민의힘과의 지지율 차가 두 자릿수 이상으로 벌어질 경우, 당은 이를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리더십 교체를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선거는 정당 후보 간 올림픽이고 이 경연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체력은 정당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위기 국면에서 구원 투수는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 리서치뷰 자체 조사로 지난해 12월 30~31일 실시한 조사에서 ‘범 진보진영의 차기 대선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물어봤다. 다음 총선에서 서울 지역과 중도층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판단돼 전체 결과와 함께 비교해봤다. 전체 결과는 이 대표가 39%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이낙연 전 총리 17%, 김동연 경기지사 7%, 박용진 의원 4%로 나타났다. 서울 거주 응답자들은 ‘범 진보진영 차기 대선 후보’로 이 대표 33%, 이 전 총리 16%, 박 의원과 김 지사를 각각 7%로 꼽았다. 중도층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기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이므로 김부겸 전 총리나 정세균 전 총리 그리고 지난해 말 복권 없이 사면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당장 이 대표를 대신할 인물은 없다. 박 의원은 대중성과 당 장악력이 거의 바닥 수준이라 구원 투수가 되기 어렵다. 김 지사는 좋은 재목이지만 광역단체장을 맡고 있어 즉각적인 구원 등판이 불가능하다.
이 대표에게 계속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민주당의 딜레마’라면 구원 투수 역시 불가피한 선택이다. 급변 사태라는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중도’, ‘호남’, ‘안정’이라는 세 가지 구질은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호남 지지세는 당의 핵심 기반이다. 중도층에 대한 호소력은 총선에서 외연 확장성을 위해 요구되는 자질이다. 안정이라면 당대표나 국무총리와 같은 고위직 경력이 금상첨화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이낙연 전 총리만큼 검증된 구원 투수를 찾기는 힘들다. 정치적인 평가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지겠지만 민주당에 MZ세대나 친문 지지층 결집에 의미가 부여되는 성격의 구원 투수라면 김경수 전 지사도 가능하다. 친노와 친문을 결집할 만한 동력이 있고 복권되지 않아 공직선거 출마는 못 하지만 당직인 당대표는 민주당 당헌·당규 해석 여부에 따라 출마 가능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상기되는 구원 투수는 이낙연이고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 김경수도 지지층 내에서 검토될 구원 투수로 분석된다. 향후 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조언처럼 정치란 생물이고 비상사태는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들이닥치는 법이다. ‘교토삼굴’이 아니라 ‘교토십굴’이라도 준비해야 할 판이다. 선발 투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구원 투수의 등판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선발 투수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팀의 성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겐 구원 투수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