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해고소송・불륜 전력 노세희, 다시 한국일보 기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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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다녔던 미주 중앙일보를 상대로 부당해고, 오버타임 미지급 등으로 집단소송을 주도했던 노세희 기자가 지난해 말, 한국일보로 적을 옮기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세희 기자는 중앙일보 해고되자 언론계를 떠나 고철회사, 보험영업을 전전했었다. 정년퇴임 연령대인 64세의 나이에 기자로 입사한 것은 아무리 고령화 시대이긴 해도 LA한인언론계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중앙일보의 한 고위간부는 박인택 사장 자살사건에 연루되고, 자사를 상대로 소송한 노 기자가 지난해 중앙일보 전현직 사우회 회식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공개석상에서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노세희는 중앙일보를 상대로 소송한 기자였기에 회사에서 주최했던 어떤 행사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출입금지’ 대상이었다. 그 흔한 회사 골프대회나 이벤트에도 ‘참석 불가’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이번 한국일보의 기자영입을 두고 중앙일보에서는 낮은 성과로 해고된 후 자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주도한 기자가 경쟁 언론사로 자리를 옮겨, 또다시 칼끝을 중앙일보에 겨눈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사옥까지 내놓고 쇠락하고 있는 한국일보의 위상이 기자 채용난으로 고령의 퇴출기자를 영입한데 불과하다며 폄하하고 있다. 이번 이직을 계기로 언론계로 이어질 파장을 집중취재 했다.  <탐사보도팀>

조직내 불화와 낮은 성과로 중앙일보에서 해고된 후 단체소송에 나섰던 노세희 기자가 10여년이 넘게 언론계를 떠나있다가 64세에 기자로 슬쩍 한국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B베어. 중앙일보 건물 건너편에 있고 안주가 푸짐해 직원들이 단골로 가는 식당이다.

“이게 말이 돼? 편집국장이 자기와 친한 후배를 부장 자리에 마구 올려도 되는 거냐고? 실력도 없는 국장이 사장에게 아부해서 올라가고, 그런 무능한 국장이 편집국에 있으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후배 기자들에게 오는거야. 주말에도 별것도 아닌 걸, 툭하면 기자들에게 전화해 취재보내는 건 뭐야.  편집국장이 사건 밸류를 모르니까 막 시키는 거지. 왜 불안하니까. 너희들도 기자들이니까 예 예, 그러지만 말고 아니다 싶으면 들이박아. 까도 까도 뭔지 모르는 다마내기(양파) 국장 아니냐. 할말은 하고.”

중앙일보 소식통에 따르면 노세희는 입사 동기들보다 서너살 많은 늦깍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탓인지 회사내에서 좌충우돌했다. 사수역할을 할 선배들은 나이가 엇비슷한 신입을 부담스러워 했고, 동기들과는 형님노릇을 자처하는 탓에 컽돌았다. 그래서 근무시간이 끝나면 후배들을 술 사준다며 억지로 회식자리로 불러내는 게 그의 특기였다. 잦은 회식비는 박봉의 기자 월급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특집기사를 쓰겠다는 구실로 촌지를 받거나, 후배들을 불러낸 회식 자리가 끝날 때쯤 취재원에게 전화해 술값 대납을 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했기에 여러차례 회사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꽤 취한채 목소리를 높이던 노세희 기자의 ‘회사 뒷까기’는 끝이 없었다. 후배들은 빨리 마치기를 바라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바로 당시 K편집국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평소 단둘이 저녁을 먹을 때나 편집국에선 “국장님, 국장님”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게 깍듯이 대하던 노세희가 아니었다. 노 기자가 취재원의 촌지를 받는다는 소식을 자주 듣고 주의를 줬지만 ‘박봉에 그럴 수 있지’라며 넘어가던 K국장이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종이신문의 부수가 줄고 매출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직원 구조조정안을 내라고 관리국에서 연일 압박을 받아왔지만 가능한 인력을 줄이지 않고 버텨왔던 K국장이었다. 하지만 이날 회사의 허리역할을 해야할 중간간부가 후배들을 선동해 국장과 회사 비난에 열올리는 것은 분명한 해사(害社) 행위였다.

‘경제부에 보냈더니 취재원에게 잔돈 뽑아 후배들과 술처먹는구나’

노 기자는 주요 취재원 만날 저녁시간에 반골세력을 모아 ‘뒷다마’를 하는 생활이 누적되었다. 다음날 회의시간에는 제대로 된 기사거리를 내놓을 밖에 없어 질책을 받는 쳇바퀴 생활이 반복됐다. 정기인사 부국장 승진 대상에서 노세희는 빠졌다.  

여러차례 촌지 사건과 불성실한 근무를 했던 노세희의 평가가 좋을리가 없었다.

승진에서 누락되자 노세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가진 기자들을 규합해 반골세력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같이 부국장 승진서 물먹은 모 경제부장과 어울리며 밤이면 1차 회식, 2차 술집을 돌았다.

후배들을 불러내어 술을 먹이며 밤새 회사 욕을 하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다 LA한인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고 박인택 중앙일보 사장의 자살사건이었다. 갑작스런 박 사장의 자살 사건에 LA한인사회와 언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한국 중앙일보가 박사장에 대한 내부감사에 착수했다는 비공식적인 얘기들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였다. 한국 감사팀 파견은 LA서 쏟아지는 투서들 때문이었다. 불공정한 인사전횡, 광고국 횡령건, 과도한 라디오 확장사업 등을 조사해 달라는 투서가 쏟아지자 본사에서 내부감사팀이 파견되었다. 한국에서 온 젊은 혈기왕성한 감사직원들이 예의없이 박인택 사장을 취조식의 탐문조사는 자존심 강한 박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박 사장은 평소 열정적으로 불도저같은 리더십으로 인해 회사내 충성파들이 많았다. 박 사장을 따르는 라인에서는 정보가 나오지 않자 감사팀은 전략을 바꾸었다.

회사에서 컽돌던 노세희를 포함한 반골 그룹을 따로 만나 박 사장의 비리를 조사한 것이다.

박 사장이 한국서 완공된 콘도분양권을 상납건과 편집국 인사전횡, 광고국 횡령에 대한 의도적인 묵인과 상납 등 구체적인 사례와 정황에 대한 증언과 자료를 받았다. 박 사장은 근거없는 내부 밀고자의 불평불만과 허위사실이 그대로 전달되자 허탈해 했다. 한국일보에서 밀리던 중앙일보를 LA에서 추진력으로 성장시킨 공에 대한 평가없이, 회사 주변을 컽돌던 비주류의 일방적인 밀고를 바탕으로 징계가 추진될 경우 그동안 쌓아왔던 본인의 명예, 또 가족에게까지 경제적 피해가 미칠 것을 우려했다.

한국 감사팀의 내부감사가 끝난 직후 박 사장은 자택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LA중앙일보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한국에서 새로 지사장이 파견됐다. 본인의 철학을 공유하는 편집, 광고 라인으로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특히 박사장의 자살사건으로 어수선했던 중앙일보를 쇄신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다. 하지만 반골세력을 주도했던 노세희는 회사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시계였다. 그는 신임 사장이 진행하는 해고 명단에 올랐고, 하루아침에 무직자가 되었다. 그와 어울리며 밤새 회사욕을 하고 다녔던 반골기자들도 다수 포함됐다.

회사에서 잘린 노세희는 같이 해고된 동료기자를 규합했다.

“이대로 떨려날 순 없잖아. 뭐라도 챙겨야지. 부당해고건으로 소송하면 잘 하면 수백만불 배상 받는 케이스도 있잖아. 각자 몇십만불 정도는 챙겨야 스몰 비즈니스라도 하나 할 수 있잖아.”

그래도 10여년 청춘을 보냈던 곳인데, 마지막을 소송으로 끝낼 순 없지 않느냐는 해고 기자의 말에 노세희는 특유의 논조로 대응했다. 

“우리가 소송을 해서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봐야 정신차리지. 특히 한국에서 파견나온 지사장들은 여기 엘에이를 어떻게 알아. 개뿔, 한국에서 했던 것 생각하고 일처리할 건데, 미국 캘리포니아 노동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야줘야 해. 같이 뭉쳐야 하고 개별로 행동해서는 절대 안돼.”

LA서 언론사 상대로 한 기자들의 첫 단체소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노세희 기자는 조직불화와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중앙일보에서 해고되자 해고자를 규합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사진은 LA중앙일보 본사. 

노세희의 제안에 설득된 해고자들은 중앙일보가 개별적으로 합의제의가 와도 응하지 말고, 회유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며 결의했다. 이렇게 수년에 걸친 소송에 중앙일보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고도 종업원 손을 들어주는 가주 노동법상 귀책사유가 많아 회사가 이길 수 없는 재판이었다. 다만 배상액은 해고자들의 예상과 달리, 변호사비를 제외하고선 초라한 수준이었다.

노세희는 소송 와중에도 후배기자들을 수시로 만나 회사의 소송대응을 파악했고 외부에 안좋은 회사 정보를 흘리며 내부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에 앞장섰다. 의도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평소 술을 마시면 떠벌이가 되는 습관 때문에 기인하는 면도 많았다고 한다.

단체소송자 중에는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해, 중앙일보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았더라면 회사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소송자로 낙인찍혀 광고 베네핏도 전혀 받지 못해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다 사장이 바뀌었다. 노세희는 신임사장이 된 선배를 통해 복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앙일보 경영진은 노세희의 처세와 이간질에 혀를 내둘렀다. 모두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음흉한 웃음을 짓는 인간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국 대기업 출신인 관리상무는 단칼에 반대했다.

“한번 뒤를 깐 인간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나중에 또, 뒤를 깝니다”라고.

대기업에서 수많은 인재채용을 해온 관리상무의 단호한 입장표명에 로컬 출신의 신임사장도 더이상 밀어붙일 수 없었다. 

노세희의 주변 취재에 응한 지인들은 ‘사람은 참 좋은데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정보가 많이 세는 편’이라며 습관적 음주의 기벽으로 돌렸다.

노세희가 가장 먼저 기자에 취업하자마자 한 일은 그가 근무했던 보험회사를 인터뷰해서 한국일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10년 밑바닥 생활을 한 그는 기사 가치를 떠나 사익이 우선이다는 걸 깨달아서 였을 것이다. 그러다 한번도 사건기자를 담당한 적 없는 기자가 이번엔 사회부로 자리를 옮겨 전방 공격수를 자임한 것도 무리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들어 노세희 기자가 중앙일보 출신의 전직 선후배들과 만나 회동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가 자리한 술자리에서도 한국일보 장재민 회장이 부동산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아느냐, 한미박물관 사업도 빨리 진행할거다 등의 과시성이지만 다소 민감한 정보들이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기자는 중앙일보나 타사로부터 정보를 빼낸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한국일보의 내부정보를 던진다는 말도 나오지만 아직 확증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이 때문에 타사 언론매체에서는 중앙일보에서 한국일보로 전향한 노세희 기자를 보며 이중첩자 ‘X맨’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있다.

10년전 중앙일보 해고된 복수전이 전개될지, 한국일보가 선택한 ‘재활용 카드’가 자충수가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제임스 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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