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잡으려면 노건호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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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탄 동문의 배신, 중앙일보의 위선과 이중잣대

2007년 여름, LA 한인타운 690 윌셔 플레이스.
해 뜨기 전 미주 중앙일보 본사 지하주차장은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을 하얗게 덮고, 관리국(지금의 경영지원실) 직원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엇갈렸다. 아직 에어컨도 켜지지 않은 차가운 공기 속에 커피 향만 먼저 퍼졌다.

“야, 어제 그 차 세차했냐?”

검정 작업복 차림의 선임 직원이 막 출근한 신입을 불러 세웠다.

“네, 과장님. 밤새워서 왁스까지 다 올렸습니다.”

“좋아. 오늘 JD 오시는 날이니까, 절대 딱딱하게 굴지 마. 공항에서 내리면 너무 들이대지도 말고, 너무 멀어지지도 말고. 수트케이스 받아들고 딱 반보 앞에서 같이 움직여. 너무 앞서가면 니 혼자 가는 꼴 되고, 뒤처지면 상무님 혼자 오는 것처럼 보여. 그게 더 창피한 거야.”

“알겠습니다…”

“말도 많이 하지 말고. 회사 얘기 나오면 ‘제가 아는 선에서는’ 하고 딱 끊어. 이상한 소리 했다가 나중에 누가 벼르는 꼴 된다.”

“예…”

“그리고 공항 주차장은 최소 한 시간 전에 들어가서 자리 잡아. 요즘 405랑 110(LA 남북 오가는 프리웨이)은 지옥이다. 늦으면 우리만 욕먹어.”

선임이 지하로 내려가자 남은 직원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오늘 누가 오시는데요? 사장님이세요?”

“산호세 공항에서 JD 뜨는 날이야. 본사 홍 회장님 큰아들, 홍정도 상무. 우리 위에 계신 분의, 그 또 위에 계신 분. 알아듣지?”

“아, 스탠포드서 MBA하신다고 들었죠. 근데 왜 LA로 오는거죠?”

“경영수업이지. 나중에 JD가 본사로 복귀해 원격으로 미주지역 관리하려면 미리 조직파악 해야 하는 거지. 게다가 박사장은 홍회장, 아버지 사람인거지.” 

신입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JD’라는 두 글자가 떨어지는 순간, 관리국 전체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내려앉는 느낌. 누군가는 서랍에서 다시 구겨진 와이셔츠를 꺼내 다림질을 하고, 누군가는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었다.

“근데 조찬식 (관리)국장이 왜 이렇게 챙기는 거죠? 조 국장은 박인택 사장님의 S대 라인 오른팔이잖아요. JD는 대학원 유학 끝나고 한국 본사 들어가잖아요.”

“JD가 중앙일보 그룹 황태자 아니야. 한국서 한번 물먹고 LA온 조 국장이 계속 자리를 지켜려면 박사장이 아닌 JD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야지. 박 사장은 지는 해, JD는 떠 오르는 해, 아닌 떠올라 지지않는 태양인 셈이지.”

지하1층, JD 전용차 A8 1년내내 대기 ..어떤 유학생엔 호화 아니다?

지하 주차장 가장 안쪽, 직원들 차가 아니라 ‘특별한 날’만 모습을 드러내는 검정색 아우디 A8 한 대가 있었다. 번호판까지 깨끗이 닦인 그 차는, 첫날 직원들에게 이렇게 소개됐다.

“사장님 관용차니까, 아무도 손대지 마. 공기만 넣어줘.”

하지만 이상했다. 박인택 사장은 단 한 번도 이 차를 타지 않았다. 본인 차량만 고집했고, 지하로 내려와 A8 옆을 지나갈 때마다 “쓸데없이 비싼 차를 왜 샀냐”며 혀를 찼다. 그렇게 A8은 1년 내내 지하에 세워진 채 먼지만 쌓여갔다.

그 차에 제대로 된 주인이 생긴 날이 바로, ‘JD가 뜨는 날’이었다.

시동이 걸리자, V8 엔진 특유의 낮고 두터운 울림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 차, 원래부터 상무님 전용이었어요?”

운전대를 잡은 L씨가 피식 웃었다.

“처음엔 다들 사장님 차인 줄 알았지. 근데 박 사장님이 안 타잖아. 나중에야 JD 전용차인줄 알았지. ‘오늘 같은 날’ 쓰라고 지하에 세워둔 거더라고. 1년에 한두 달 타려고 2-3억짜리 차를 묵혀두는 거지. 그게 진짜 권력이야.”

압구정 로데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금수저 3세’ JD의 취향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벤츠, BMW는 너무 티 나서 싫고, 아우디가 더 세련됐다더라. 뭐 그런 얘기도 있었지.”

몇 년 뒤, 중앙일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를 겨냥해 ‘중고 폭스바겐 투아렉’을 ‘1억 원대 고급수입차’로 부풀려 보도했을 때, 이 지하주차장에서 A8을 지켜보던 한 직원은 그 기사를 보고 속으로 욕을 삼켰다.

‘같은 스탠퍼드 MBA 동문인데… 노건호는 중고 폭스바겐 타면 부정축재고, 홍정도는 학생 신분에 LA 내려오면 상무님에 전용차 A8에 프라이빗 골프장 접대 받는 건 당연한 특혜냐? 정권만 바뀌었지, 중앙일보도 다를 게없구나.’

F-1, L-1 ‘알수없는 체류신분’, 그리고 말 걸 수 없는 상무님 JD

더 묘한 건, 그때 사내에 돌던 “체류 신분” 얘기였다.
당시 홍정도는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F-1 학생비자로 스탠퍼드 MBA를 다니고 있었을 시기다. F-1은 미국 내‘취업 활동’이 엄격히 제한된다. 주재원 L-1 비자라면 모를까, 학생비자로 미국 법인에서 직함을 달고 ‘근무’하는건 이민법 위반에 걸릴 수 있는 영역이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영주권이나 적절한 취업비자가 아닌 상태에서 정식 직함, 급여, 차량 제공까지 받았다면… 적어도 이민법상 위반이고 아무리 본사 임원이었다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미주 중앙일보는 그럼에도 그를 ‘상무’라 불렀고, 지하 1층 A8의 주인으로 대접했다.
홍정도, 한국 본사 홍석현 회장의 장남. 미주 중앙일보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직원들은 굳이 말로 확인할필요가 없었다.

(본지는 한국 중앙일보, 홍정도 대표, 미주 중앙일보 경영지원실에 당시 홍정도 상무의 미국 체류 신분, 시민권/영주권 여부 및 미주 중앙일보에서의 역할과 혜택 제공 범위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으나, 마감 시점까지 별도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같은 시기, 같은 미국 대학원에 다니던 두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에게는 한 줄 한 줄이 칼날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자사 후계자인 홍정도에게는 말랑말랑한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
무너진 권력에겐 잔혹하고, 살아 있는 언론 권력에겐 관대하기만 한 중앙일보 보도의 이중성이, 지하 3층 먼지 한톨 없는 A8 안에서도 조용히 웅얼거리고 있었다.

미주 중앙일보 지하 1층 주차장은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대학원 재학시절 홍정도가 타던 전용차량 A8도 이 지하주차장에서 1년내내 먼지가 쌓인채 주차돼 있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직원 제공.

대통령 아들도재벌 3세도…   제자였지

두 사람의 교차점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이는, GMAT 수학 과외계의 ‘전설’로 불리는 Y씨였다.

서울대 수학과 출신. 원래 본인도 유학을 준비하다가 GMAT 수학 과외로 대박을 터뜨려,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과외만 하던 인물. “한국 학생이 하버드·와튼·스탠퍼드 가려면 Verbal보다 Quant 만점이 더 중요하다”는 신화를만든 장본인. 실제로 그의 수업을 거쳐간 학생들 상당수가 미국 톱 MBA에 입학했다.

어느 날, LA를 방문한 Y씨를 OB 맥주집 구석 테이블에서 만났다.
카스잔을 돌리던 Y씨가 슬쩍 꺼냈다.

“청와대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VIP 자제 노건호 학생, 공개 강의는 경호상 어렵다. 1대1 과외를 부탁한다’고. 나, 사실 노무현 팬이거든. 기꺼이 한다고 했지.”

그는 경호원이 지정한 비밀스러운 장소로 출강해, 조용한 방에서 대통령 아들에게 방정식과 확률문제를가르쳤다.

“그 친구, 생각보다 소탈했어. 시험점수에 대한 압박은 컸지만, 성실했고 말투는 되게 평범했지.”

며칠 뒤, 이번엔 또 다른 연락이 왔다.

“대기업 후계자 한 명을 봐달래. 막상 가보니까,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아들 홍정도더라고. 나중엔 나한테 ‘형, 형’ 하면서 지냈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형밖에 없다’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참 신기했어.”

Y씨는 대통령의 아들과 재벌 언론사 후계자를 모두 스탠퍼드에 보냈다는 걸 나름 자랑스럽게 여겼다.

“노 대통령이 홍 회장을 주미대사로 앉혔잖아. X파일 터지면서 낙마했지만, 그 전까지는 관계가 나쁘지 않았어. 중앙일보도 조선일보 턱밑까지 쫓아가고 싶었고. 다들 윈윈 그림을 그리던 시기였지.”

하지만 그 ‘윈윈 그림’은, 스탠퍼드에 입학한 뒤부터 어딘가 삐끗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복수의 칼

입학 후 스탠퍼드 캠퍼스에서 흘러나오던 이야기는 묘했다.
두산·LG, 다른 대기업 2·3세들이 처음에는 홍정도와 어울려 다니다가, 점점 노건호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한테 들었어. 노건호랑 술 마시고 밥 먹으면, 홍정도가 노골적으로 분위기를 싸늘하게만들었다더라. 뭐, 기업 후계자 입장에선 살아 있는 권력 눈치를 보는 게 본능이니까.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을왕따시키는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거지.”

LA 방학 때면, 홍정도는 종종 미주 중앙일보 건물 옆 교육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는 모습이 직원들에게포착됐다.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는 날이 많았다.

“멀찍이서 보면… 되게 외로워 보였어. 누가 말 걸면 안 되는 사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

어느 미주 직원의 기억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집안의 장남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보였던 그 모습은, 훗날 또다른 균열의 전조처럼 떠오른다. 

스탠포드 유학시절 방학때 LA를 방문한 홍정도 상무는 미주중앙일보 건너편 교육원 건물앞에서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사진 출처는 교육원 건물 앞에서 홍정도 사진을 합성한 AI사진.

살아있는 대통령 권력앞에서 철저히 동문들로부터 외면받았던 보수언론의 황태자. 아버지 홍석현의 비서실장이 미주 지사장으로 와 있는 미주 중앙일보 법인. 새로운 물갈이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중 본사 대표로 승진한 홍정도는 미주 법인 박인택 사장 라인에 섰던 모든 로컬라인은 구조조정 명목으로 잘라냈다. 

‘KOREA 2.0’ – 누가 한국을 설계할 것인가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2007년 ‘KOREA 2.0’ 프로젝트 때였다.
스탠퍼드 MBA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해 정치·재계 리더들을 만나고,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공부하는 9박10일짜리 프로그램.
보통이라면 중앙일보 황태자 인맥으로 대한민국 정관계와 기업을 쥐라펴라는 홍정도가 자연스럽게 중심에서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맥킨지, 골드만삭스 출신 동문 K씨와 P씨가 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가서 진짜 임팩트를 내고 싶으면, 청와대와 같이 움직여야 해. 대통령 아들이 우리 동기잖아. 노건호를 전면에 세우는 게 맞다.”

그렇게 프로그램 총괄은 노건호 몫이 됐다.
그가 쓴 계획서는 36쪽에 달했다. 2007년 12월 15일~24일, 9박 10일 일정. 정관계·재계·시민사회까지, 한국 사회주요 플레이어를 망라해 빼곡히 채워 넣은 일정표였다.

  • 청와대 대통령 면담
  • 각 부처 장관과의 브리핑
  • 삼성·현대·LG 등 재벌 그룹 회장단 미팅
  • 오마이뉴스 방문 및 점심 간담회

계획서 11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2월 23일 오전 11시~오후 1시 30분, 청와대 방문.
THE PRESIDENT OF KOREA(노무현 대통령) 면담.”

동문들은 열광했다.

“우리가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는 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경복궁과 재래시장, 경주와 DMZ, 홍대 찜질방과 나이트클럽까지 섭렵하는 일정.
대선 전날인 12월 18일에는 서울 도심 거리 유세를 직접 지켜보는 계획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 마지막 쪽엔, 베트남 태광실업 공장 방문이 조용히 끼어 있었다.
“한국 일정이 끝난 뒤, 베트남에서 사업을 키워가던 ‘박연차 회장’의 공장을 방문한다”는 문장이, 단 몇 줄로정리돼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많은 학생들이 기대했던 대목은, 의외로 마지막에 붙은 한 줄이었다.

“오마이뉴스 방문 및 점심식사 – 시민언론과의 대화”

대형 신문사와 함께 대등한 위치의 인터넷 시민언론을 정식 일정 파트너로 넣었다는 점이 누군가에겐 통쾌했고, 누군가에겐 모욕이었다.

“대 중앙일보와, 인터넷 시민언론을 같은 ‘언론 파트너’로 놓는다고? 그거, JD가 제일 싫어할 그림 아니냐?”

그 말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됐다.

박연차노무현 커넥션그리고 ‘누가 알고 있었나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청와대 면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오마이뉴스 점심 테이블에서어떤 질문이 오갔는지에 대한 공식 기록은 많지 않고 스탠포드 동문들도 기자의 취재요청에 함구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일정이 끝난 뒤 한국 정치는 급격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잇는 소위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가장 앞장서서 두사람의 관계를 파헤친 언론이 바로 중앙일보였다.
500만 달러 송금, 베트남 사업 수주 의혹 등, 이후 드러난 여러 정황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KOREA 2.0’ 일정표와 묘하게 겹쳤다.

그 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스탠퍼드에서 함께 공부했고, 일정 기획과 실행 보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

그리고 이후 중앙일보·JTBC의 핵심 보고라인에 올라탄 사람.

바로 홍정도였다.

2009년 봄, 중앙일보와 미주 중앙일보는 박연차–노무현 커넥션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주 중앙일보는 S기자와 K사진기자를 샌디에이고로 급파해, 망원렌즈로 노건호의 집을 촬영해 송고했다. 한국포털과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며 ‘노무현 죽이기’ 프레임을 완성해 갔다. 그 즈음 노건호는 한 언론과의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눈물을 삼키며 당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아버지가 걱정입니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뒷산.
‘가장 서민적인 대통령’이라 불렸던 노무현은, 끝내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 비극이 벌어지기 몇 해 전, 스탠퍼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같은 프로그램 일정을 공유했던 동문들 중일부는, 지금도 이렇게 읊조린다고 한다.

“우린 다 알고 있었어. 누가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어디를 같이 갔는지, 어떤 그림을 원했는지… 단지, 그걸 어떻게 써 먹을지 선택한 사람만 따로 있었을 뿐이지.”

많이 외롭죠?” – 이혼과 ‘침묵의 카르텔

정치 이야기가 길어지자, Y씨는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도가 가끔 전화했어. ‘형, 많이 외롭죠?’라면서, 되게 낮은 목소리로.
나도 농담처럼 ‘야, 네가 더 외롭겠다’고 받아쳤지. 근데 그 외로움이 결국, 제일 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왔던 것같아.”

그 ‘약한 고리’는, 한국 언론이 기묘하게 침묵했던 영역이었다.
홍정도–윤선영 부부의 파탄과 이혼 이야기이다.

홍석현 회장의 장남 홍정도의 배우자 윤선영 변호사는, 다트머스·하버드 로스쿨을 거친 엘리트 법조인이다.
윤재륜 서울대 교수의 장녀이자, 유화증권 창업주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의 손녀. 성보화학을 모기업으로둔 이 집안은, JTBC와 TV조선 등에까지 출자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현금 부자’로 알려져 있다.

결혼 후 한동안 별다른 사회활동을 하지 않던 윤선영은, 2014년 12월 중앙미디어그룹 계열사 제이콘텐트리전략기획실장(상무)으로 전격 발탁된다. 그룹 핵심 사업들을 거느린 회사의 ‘핵심 자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삐걱거렸다.
재계와 언론계 주변에서는 “홍 사장이 T걸그룹의 H양과의 애정 문제가 들통나서 윤선영이 이혼 소송이 진행중이다”, “위자료 액수가 역대급이다” 같은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윤씨가 하버드 로스쿨 변호사 출신인지 확실히 달랐다. 위자료로 1조 원대 요구를 했다더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그중 일부는 윤씨집안에서 투자한 투자금 정산 성격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작 본국 주요 언론에는, 이런 소문과 갈등이 단 한 줄도 본격적으로 실리지 않았다. 
언론사 사주의 사생활만큼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
그 카르텔의 이름 모를 벽은, 노동자들의 해고 기사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였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만 놓고 보면, 퍼즐 조각들은 조금씩 맞춰진다.

  • 2017년 전후, 홍석현 회장이 BGF리테일 주식 228만 주를 블록딜로 매각한 사실과 그 매각대금 규모가 약2000억 원대로 알려졌다는 점.
  • 비슷한 시기, 중앙그룹 내부에서 “거액의 합의금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는 점.

복수의 중앙미디어그룹 관계자들은 이렇게 귀띔한다.

“정확한 액수는 우리도 몰라요. 다만, ‘현금+일부 사업지분’ 패키지로 정리됐다는 얘기가 돌았죠. BGF 블록딜 규모와 묘하게 겹친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물론, 이 모든 얘기는 폐쇄적인 그룹 내부에서 나온 얘기들로 위자료인지, 투자금 정산인지 외부에서 단정할 수없다. 더욱 뼈아픈 것은 불륜설로 파탄난 이혼사유라 향후 중앙일보, JTBC가 ‘현금부자’ 윤씨 집안의 사업적 조력을 기대할 수 없던 점이 향후 그룹 경영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끼쳤다는 것은 그룹 핵심 관계자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이혼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냉정하게 드러난다.

개인적 문제든, 경영상 판단이든,
사주의 집안에서 발생한 거대한 ‘구멍’은
결국 직원들의 해고와 구조조정, ‘눈물의 리스트’라는 형태로 메워졌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의 칼날은 누구를 향했나

회계사들과 미디어 산업 분석가들은 2020년 전 후부터 시작된 JTBC·중앙일보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두고이렇게 말한다.

“광고 시장 악화, 디지털 전환 실패 같은 구조적 요인이 가장 크죠. 다만, 몇 년 사이에 사주 일가 차원에서 발생한거대한 현금 유출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내부에서도 그 부담이 ‘누구 몫이냐’를 두고 깊은 냉기가 흐른 걸로 알고 있어요.”

이른바 ‘살생부’라 불린 인력 구조조정 리스트.
수십 년을 기자·PD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책상을 빼야 했던 그 순간들.

그 칼날이 내려올 때, 사주의 개인적 선택과 경영진의 오판이 얼마나,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본격적인내부 토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우린 늘 남의 집안 이야기, 남의 비리, 남의 탐욕을 잴 줄만 알았지.
정작 우리 집안, 우리 사주의 선택이 어떤 후폭풍을 불렀는지는 기사로 써본 적이 없다.”

한국사회에서 정치, 종교, 심지어 사기업에서조차 세습 경영이 사라져 가는 요즘, 권력을 좌우하는 언론 권력은 유일한 성역으로 남아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 3세대 ‘세습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4.19 혁명 시위대에 피묻힌 손, 그 당사자의 후손에게 말이다.

그 침묵과 왜곡, 억눌린 이야기들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는,
곧 이어질 4편에서 다룰 한 사장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과 함께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최상태 기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steven@sundaynewsusa.com

본 기사는 미주 중앙일보·JTBC 전·현직 직원 및 관계자 제보를 바탕으로 한 극화 르포입니다.
현장감을 위해 일부 대화·상황을 재구성했으며, 일부 내용은 제보자의 기억과 인상에 기초한 추정이 포함돼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확인 가능한 오류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확인 즉시 정정하겠습니다.

[알림]

JTBC·중앙일보 등 언론사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경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고되었거나 조직 내부조리를 목도한 현직·전직 직원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한국 언론사 내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입을 열기 어려웠던 경영진의 비리 및 횡령 의혹, 부당한 인사와 예산 유용, 방송 제작·편성 과정의 부당·불법 개입, 그 외 조직의 구조적 부패와 비윤리적 행태 등에대한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를 받고자 합니다.

한국 언론에서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라도, 언론 자유가 상대적으로 보장되는 해외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릴 수있도록 돕겠습니다. 신변 보호와 익명 보장은 기본이며, 필요 시 법적 보호 절차도 함께 검토하겠습니다.

연락처: Email – steven@sundaynews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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