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파장
찬성 139, 반대 138…이재명, 가결만큼 아픈 부결
비명계는 “2선 후퇴” 촉구, 개딸은 “반동분자 색출”
개인비리에 방탄국회…국민 반감확산땐 ‘친명’도 흔들
검찰은 대북송금 영장청구땐 가결 가능성 높아져
민주당 지도부가 자신하던 ‘압도적 부결’은 없었다. 단순 수치상으로도 체포안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한 표 많았다. 이날 본회의엔 민주당 의원 169명이 전원 참석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 5명(김진표·민형배·박완주·양정숙·윤미향)과 이미 부결 의사를 밝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까지 합치면 범민주당 의원은 175명에 이른다.
‘찬성(가) 139표 대 반대(부) 138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7일 민주당 의원 169명 전원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 등 175명이 표결에 참여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부결됐다. 이 대표는 가까스로 구속 위기를 면했지만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범(汎)민주당에서 37명의 ‘이탈표’가 나와서다. 민주당 내부에서 40명가량 의원이 ‘이재명 방탄 국회’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의미다.
국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에 개회한 본회의 첫 안건으로 이 대표 체포안을 무기명 투표에 부쳤다.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구속수감 중인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과 무소속 김홍걸 의원이 불참해 297명(재석)이 투표했다. 결과는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였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 찬성으로 통과된다. 따라서 이날 가결 정족수인 출석의원 과반(149표)에서 10표가 모자라 이 대표 체포안은 부결됐다.
이 대표는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힘을 모아 윤석열 독재정권의 검사 독재에 맞서 싸우겠다”라고만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당장 “이날 표결 결과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신임과 당 차원의 방탄 국회 전략에 대한 상당수의 거부 의사가 드러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들 가운데 37명이 체포안 찬성이나 무효·기권으로 ‘방탄 대열’에서 이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28일 같은 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161표로 부결(가결 101표)될 때와 비교해서도 23명이 추가로 이탈한 셈이다.
반면에 범민주당 의원 가운데 17명이 체포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체포안을 찬성하는 의원 수는 국민의힘 114명, 정의당 6명,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과 무소속 양향자 의원 등 122명으로 예상됐는데, 이보다 17표 많은 찬성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별도로 20명은 체포안에 찬성하는 대신 무효표나 기권표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했다.
이 같은 투표 결과는 민주당 주도 거야(巨野)가 의석수로 밀어붙인 최근 표결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지난 8일)의 경우, 무려 179명이 민주당 당론과 뜻을 같이했다.
당시 정의당(6명)이 민주당과 뜻을 같이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민주당 ‘단일 대오’의 힘을 보여준 결과였다. 지난해 9월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국민의힘·정의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재석의원 170명 중 168명 찬성으로 무난히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체포동의안 부결로 이재명 대표는 당장 검찰 구속은 피했지만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이 대표가 표결에 앞선 신상발언에서 본회의장에 배석한 의원들을 향해 “법치의 탈을 쓴 정권의 퇴행에 의원 여러분이 엄중한 경고를 보내 달라”고 호소했으나, 소속 의원 수십 명이 집단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내부도 집단 이탈표가 대거 나오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정권을 ‘검사 독재’로 규정하고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려던 지도부의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친이재명(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의 당내 투쟁도 격화될 조짐이다.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당장 비명계에선 “지난해 전당대회 때 지도부를 한쪽이 싹쓸이한 데 대한 평가부터 당 운영 쇄신 요구까지, 이제는 이 대표가 직접 답해야 할 때”(비명계 수도권 의원)라며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이번에도 이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그때는 야당 대표 체포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2선 후퇴 요구도 거론했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당 지지율에 부담이 되는 만큼, 이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포안 표결 전에 이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에서 다수 비명계는 이 같은 주장을 내비쳤다. 친문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사람이 전언 형태를 빌려 ‘이런 주장을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중히 건의했으나 이 대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며 “표결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본인이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퇴진 요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비명계에선 특히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이번에는 모두가 이견 없이 확실히 부결시키자”고 주장했던 5선 중진 설훈 의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의총 직전 이 대표와 독대했던 설 의원은 “부결하고 나면 대표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결단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설 의원은 본회의 직후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물음에 “앞으로 좀 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이, 비명계 공세에도 버틸 가능성 높아
민주당 쇄신보다는 ‘전열 정비’ 가닥
“윤 정부와 전면전” 강경대응 노선 불가피
‘개딸’들, 비명계 색출땐 분당 가능성도
비명계의 공세에도 이 대표는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체포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138명으로 민주당 169석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의석이다. 특히 권리당원 내에서 이 대표 지지세는 두텁다.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 거취 결단 가능성에 대해 “그럴 리 있겠나, 끝까지 가야죠”라고 답했다. “이 대표 스스로 직을 내려놓지 않는 한 당헌·당규상 대표를 끌어내릴 방법은 전혀 없다”(비명계 보좌관)는 말도 나왔다.
친명계도 일단 ‘쇄신’보다는 ‘전열 정비’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신(新)이재명계’로 불리는 김병기 수석 사무부총장은 페이스북에 “전열을 재정비하겠다. 검폭 정권의 폭거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쨌든 부결됐으니 여권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더 단단하고 강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개딸’로 자칭하는 강성 지지층은 권리당원 게시판 등을 통해 ‘수박(겉과 속이 다른 의원을 뜻하는 은어)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는 등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27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체포동의안 부결로 이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 여부 판단은 이뤄지지 않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앞에서 거대 야당이 사실상 사분오열된 상태임이 이번 표결을 통해 확인됐다. 당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이 대표에게 있다는 목소리로 터져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 대장동 개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성남시에 4천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네이버 등 성남시 소재 기업들의 인허가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성남시 축구단인 성남FC에 불법으로 133억의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해당 혐의에 대해 자신이 받은 돈은 없다며 결백을 주장해왔다. 특히 성남FC 사건의 경우 정권교체 이전에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대선 패자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맞서왔다.
그러나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많은 동료 의원이 이 대표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의 혐의가 당과 무관한 개인 비위 의혹이란 점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는 ‘방탄정당’ 프레임에 얽매일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출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이제 이 대표 사법리스크의 향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조짐이다. 이 대표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두 사건 말고도 쌍방울 대북송금 등 여러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앞으로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추가 소환 및 조사, 체포동의 요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향후 검찰의 추가 영장청구에 과반수를 동원한 부결로 대응할 태세이지만 이 대표의 당내 리더십이 타격을 입은 터라 ‘강대강’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총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 방탄 논란이 격화하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특히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석권한 수도권 민심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야권 지지층의 동요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자신과 당의 앞날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 길인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방탄의 벽을 탄탄하게 치는 것보다 ‘사즉생’의 자세로 영장실질심사에 나가는 게 올바른 처신이라는 당내 원로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떳떳하다면 불체포특권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의 면모를 보일 때 길이 열리는 법이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옛말이 있듯, 정치적 벼랑 끝에 선 이재명 대표가 당내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어떤 묘책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