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때는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 했단건가”
문 대통령, ‘정치적 중립’ 깨고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현 정권을 적폐 청산 수사 대상으로 비난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을 향해 강하게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선거 중립을 지켜왔던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강하게 발언을 한 것은 윤 후보의 비판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가 현 정부를 적폐로 예단해 정치 보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자 강력하게 경고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박 수석은 브리핑 이후 문 대통령의 발언 배경이나 이유 등에 대한 질의응답도 받지 않고 연단을 내려갔다.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수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검찰개혁 미완의 ‘책임’이 있는 윤 후보가 촛불 혁명으로 세워진 현 정권을 적폐 청산 대상으로 치부한 데 대한 강한 불만으로 읽힌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정치적 중립’을 깨뜨릴 만큼 수용 가능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실제 지난해 7월 대선 경선 레이스 시기부터 청와대 참모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여러 차례 강조한 뒤, 스스로도 관련 발언을 삼갔다. 청와대 차원에서 간혹 대응은 있었지만 수위는 조절됐다.
문 대통령은 그에 앞서 윤 후보가 야권 후보로 대두되던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고 발언한 부분은 자신의 당부를 저버린 윤 총장의 ‘모순’을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를 검찰총장로 임명할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 개의치 말고 엄정하게 비리를 척결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도리어 윤 후보가 현 정권을 검찰개혁을 방해한 적폐로 돌린 것에 대한 분노라는 해석이다.
아울러 윤 후보가 전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그러는데 저는 사기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제1야당 후보에 대해 직접 강한 비판을 하면서 대선 정국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 지지층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이 후보를 지지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윤 후보는 지난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 시 검찰공화국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여권의 프레임”이라며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고, 매우 불쾌하다”고 입장을 밝혔고, 여권은 “정치보복 선언”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내가 한 건 정당한 적폐 처리이고 남이 하는 건 보복이고, 그런 프레임은 맞지 않다”고 반박하며, 되려 청와대를 향해 “불쾌할 일이 뭐 있겠냐”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될 게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