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한인은행 시리즈 <5>
밸리소재 출석 대형교회 권사모임 내분
교회서 ‘재력있는 권사그룹’ 따로 챙겨
위화감 느낀 권사들 “교회서도 푸대접”
오픈뱅크 민 김 행장이 밸리에 출석중인 교회에서 권사그룹 편가르기에 나서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행장이 출석중인 E교회는 노스리지 지역에 3000명이 다니는 대형교회. 이 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월에 교단에서 정한 은퇴정년 이전에 담임목사직을 내놓겠다고 아름다운 은퇴를 선포, 교계에 귀감이 되기도 했다.
민 김 행장은 이 교회에서 오랫동안 권사직을 맡고 있는데, 교회내 상류층 권사그룹을 주도하고 있고 그에 끼지 못하는 일부 권사들이 위화감 때문에 교회생활 못하겠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C권사는 “교회에 봉사하는 직무는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섬김이 목적이 되어야 하지요. 사회적 레벨이 달라 도저히 낄 수 없는 권사 그룹이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있어도 없는 척 해야 하는데, 명품 치장하고 교회서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면 직분맡은 자들의 본본이 아니죠”라고 말했다.
민 김 행장이 주축인 권사 그룹은 교회내 파워그룹으로 사회적 명망이 있거나 남편들이 재산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기 그룹끼리만모여 골프도 치고 별도 모임을 갖고 있다.
민 김 행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철처하게 본인 라인을 관리하는 스타일인데, 교회에서도 이런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
사회적으로 변변한 명함이 없는 권사들은 이들 모임에 가도 화제에 못낀다. 교회 모임인데도 사회, 경제 돌아가는 얘기, 재산 증식과 관련한 얘기, 휴가 얘기 등인데 본인들과는 차원들이 다르다 보니 슬그머니 나오게 된다는 얘기다.
K권사는 “교회면 교회답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돈버는 얘기보다는 구제에 힘쓰는 교회 모임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권사들이 모여 골프얘기나 하고 남편 자랑만 하니 참 딱해요. 권사 직분은 섬기라고 주어진 것인데..”라면 말꼬리를 흐렸다.
올해 12년째로 접어드는 오픈뱅크. 민 김 행장이 투자유치하러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년째라니 놀라는 한인사회 유지들이 많다. 성실하고,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김 행장이 어느 때부터는 타운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행장, 여직원과 소통이 가장 어려운 행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인 은행가의 여성행장 대표선수 민김(63·한국명 김민정) 오픈뱅크 행장. ‘1호 여성 행장’ 타이틀을 얻기 전부터 최초 여성 지점장, 최초 여성 전무, 한인 여성 최고 연봉 등의 수식어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170cm가 훌쩍 넘는 키에 카리스마 넘치는 미모는 여전하다. 그런데 은행 창립할 때의 초심도 여전할까?
은행 파운더이자 초대행장 타이틀에 안주해서일까, 은행 주식 가격은 타 한인은행에 비해 오르지 않고, 차세대 리더는 안보인다는 이사회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서는 직원간 소통 어려워
차세대 리더 못키우는 조직 문화
이사들은 은행 주가 제자리 불만
#. “김 행장이 독보적인 리더십을 가졌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못하죠. 망했던 은행을 이만큼 키운 것도 대단한 노력이죠. 그런데 10년이 지나면서 은행이 뭔가 정체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사인데도 행장과 개별적으로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도 쉽지 않아요”
#. “본인이 최초의 여성 지점장, 최초의 여성 전무, 최초의 여성 행장 등 수많은 신기록을 세웠는데, 지금 은행에선 왜 본인 같은 미래성장 인력을 안 키우는 지 모르겠어요. 유망한 여성 간부는 이사들과 미팅을 아예 차단하고 얼씬도 못하게 하니 말이죠.”
#. “솔직히 김 행장님 눈치를 많이 봐요. 업무 일로 이사님에게 연락해서 만났다가 이 일이 행장님 귀에 들어가 아주 곤란한 지경이 생겼어요. 그 뒤론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제가 나서질 않아요. 은행 이사님들을 절대 개별적으로 접촉하지도 않고요.”
#. “회의에선 행장님보다 똑똑한 발언을 하면 안되는 것이 철칙이죠. 어줍게 아는 척한다고 했다가 찍히면 은행 생활이 힘드니까요. 근데 모든 회사가 그렇지 않나요?”
# 벤 홍 행장 멘토링으로 텔러에서 행장까지
1982년 USC를 졸업하고 미국 은행에 입사하려고 했지만 줄줄이 다 떨어지고 겨우 붙은 데가 윌셔은행(현 뱅크오브호프). 그녀의 할 일은 창구에서 손님을 맞는 텔러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견뎠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보수적이기로 손꼽히는 한인 은행가에서 최초로 여성 행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드라마틱한 일이 많았겠는가. 그녀의 출세는 그녀의 성실함도 있었지만 벤 홍 행장의 여성 인력 확보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홍 행장의 후견 아래 그녀는 눈부신 성장을 했고, 여성 최초의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 “2000년에 일찌감치 4년 임기 보장을 받아서 일까요? 주변에선 은행의 위기가 초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미국 주류은행들도 핀테크나 AI 정책에 집중하고, 한인은행들은 자바시장이 무너진 이래로, 차세대 고객 전략도 살펴야 하는데 은행 자체의 움직임이 많이 둔감해 진 것 같습니다.”
#. 나라은행 시절 민 김 라인에 못 들어 오픈뱅크에 합류하지 못했던 한 여성 지점장의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녀의 질투에 견딜 수 있는 여자는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은행내 여성 인력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하잖아요. 흐르도록 해줘야죠.”
은행이나 교회나 초심을 잃지 않는 오픈 마인드가 중요하다. 본지 대표는 은행에 직접 가서 행장과의 미팅을 요청했지만 은행 홍보팀장은 쌀쌀맞게 “행장님은 만나기 어려우시니까, 메시지 남기면 연락드릴게요”라고 답했다. 물론 담당자로부터 어떤 연락도 없었다. 몇번씩 가도 이렇게 문턱이 높은 것은 오픈은행이 초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마5:16). 오픈은행의 메인 슬로건이다.
이준•리디아 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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