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Blog Page 14

행장은 웃는데 고객은 울고 싶다

0

케빈 김 행장, 연봉 300만불 ‘연봉 킹’
덩치는 리저널 뱅크…고객 서비스는 ‘뒷걸음’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불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며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미주 한인 최대은행으로 꼽히는 뱅크오브호프 케빈 김 은행장 급여가 무려 300만불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한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주류 은행들은 코로나 장기화로 수수료 인하 및 개인 대출 연장 서비스 등을 고통분담에 나서는 것에 반해 뱅크오브호프는 한인 최대은행으로서 책임있는 역할보다는 외형적인 성장과 은행장 개인의 권력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런 여론은 뱅크오브호프 케빈 김 은행장 급여는 동급 규모의 중국계 은행장보다 무려 100만불 이상을 더 받았다는 보도가 쏟아지면서다. ESG와 같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역할을 제시해야 할 이사회는 케빈 김 행장의 거수기 역할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은행잔고에서 한 푼이 아쉬운 고객들은 비싼 연체 수수료를 내고 있고 대출 연장도 중단되는 가운데 리저널 은행을 자처하면서도 구태의연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뱅크오브호프의 현상황을 짚어본다. <이준 기자>

뱅크오브호프 케빈 김 행장.

180억불 규모 리저널 은행, 한사람이 좌지우지

지난해 뱅크오브호프의 케빈 김 은행장 연봉이 최고 3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행권이 코로나 기간 유례없는 성장과 함께 호실적의 성과가 최고경영자(CE0) 연봉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 대형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고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수수료를 인하 또는 폐지하는 노력에 비해 한인 최대은행으로서의 서비스 개선에 힘쓰기 보다 은행장 개인의 베네핏에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케빈 김 행장은 한인은행에서 전례 없이 은행 이사장과 행장, 그리고 올해부터는 프레지던트직까지 맡고 있다. 한 사람이180억불대 규모의 리저널 은행의 전권을 구사하고 있어 ‘체크와 밸런스’가 생명인 은행 경영에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은행권에 따르면 미주 최대 한인은행 뱅크 오브 호프는 지난 2020년 케빈 김 은행장에게 총 보수 282만 3,802달러를 지급했다.
케빈 김 행장 다음으로는 바니 이 한미은행 행장(146만 3,615달러), 민 김 오픈뱅크 행장(102만 3,300달러), 김동일 US 메트로 은행 행장(55만 1,785달러), 헨리 김 퍼시틱 시티 뱅크 행장(55만 253달러), 조앤 김 CBB 은행 행장(42만 7,047달러) 순이었다. 이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공개된 은행들의 프록시(Proxy)를 분석한 결과로 급여와 스톡옵션이 포함된 총 보수 금액이다. 
행장들의 막대한 연봉은 기본적인 급여가 높기도 하지만 스톡옵션 혜택을 크게 누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케빈 김 행장은 2020년 기본급으로만 99만 9,300달러를 받았다. 이는 전년(95만 달러) 대비 5.2% 오른 금액이다.
하지만 케빈 김 행장의 해당 연도 스톡옵션 금액은 113만 4,628달러로 기본급보다 많았다. 이외에도 각종 성과급이 포함돼 총 보수가 282만 달러에 달하게 된 것이다. 
김 은행장의 연봉은 비슷한 규모의 중국계 은행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다. 자산 규모가 198억 4,600만 달러로 LA 카운티에 본점을 둔 42개 은행 중 5번째로 큰 은행인 케세이 벵크의 창 리우 은행장은 2020년 총 211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창리우 은행장과 김 행장 연봉과의 격차가 무려 70만불 이상 차이가 난다. 

케빈 김 은행장은 급여 인상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2018년  은행 주주총회에서 공개된 프록시(Proxy)에 따르면 케빈 김 행장의 기본 연봉이 19.1%까지 인상됐다. 그 해 공개된 한인 은행장의 연봉 인상폭 가운데 최고로 나타났다. 김 행장은 2017년 기본 연봉(Base Salary)으로 84만 달러로 받은 것으로 나타나 2016년의 70만5000달러에 비해 19.1%가 인상됐다. 김 행장이 기본연봉, 보너스, 인센티브 등을 모두 합산해 2017년 받은 총 컴펜세이션 규모는 225만 달러에 달했다.  2년새 컴펜세이션 규모가 역시 60만불 이상 된 것으로 이는 한인기업에 있던 어떤 샐러리맨보다 급여 인상폭이 큰 것이다. 

2014년 7월 BBCN 뱅크 시절 케빈 김 행장의 급여를 살펴보자. 

당시 이사회는 김 행장의 연봉을 65만 달러로 책정했으며 연간 50%에서 최대125%의 현금 보너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연봉 기준도 그나마 이사회를 김 행장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한선이 제시되고 인상폭을 규제할 수 있었다. 

행장 임기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는 5년 임기 보장으로 2019년 4월10일에는 행장직을 내려놔야 했지만, 그사이 케빈 김 행장은 윌셔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뱅크오브호프를 출범 시켰다. 자신의 은행장의 임기를 2022년 3월 31일로 연장했다. 하지만 추가로 2번의 1년 자동 연장 조항이 있어 은행이나 김 행장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한 2024년 3월31일까지 임기가 연장된다. 사실상 김 행장의 임기가 아직은 2년 더 남은 셈이다.

연봉, 스톡옵션, 임기도 본인이 정한다(?)

한인은행의 한 고위임원은 “케빈 김 행장은 운이 기막히게 좋다. 사실 은행가에서는 김 행장이 뱅크오브호프에서 행장 경험이 적어 비전문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한 불협화음과 반발이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은행 경영에 대한 성과가 제대로 평가 받을 즈음에 코로나가 딱 터졌다. 코로나 19를 위해 연방정부의 지원이 모두 은행을 통해 이뤄지니 은행 매출과 순익이 성장했고, 이는 모두 김 행장의 경영성과로 잡히게 됐다”고 말했다. 

뱅크오브호프는 지난해 전체 순익이 2억 15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이는 한인은행 전체 순익의 35%에 달했다. 하지만 순익증가율이 한인은행 평균 2배에 못 미치는 1.71배에 그쳤다. 

실제로 뱅크오브호프의 지난해 사상최대 성장을 기록한 것은 연방정부의 코로나19에 따른 경기부양 정책 때문이었다. 개인들에게는 경기부양 현금지원을, 소기업에는 PPP와 경제피해 재난대출, 특히 식당들에게는 식당재활자금(RRF)등 연방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데 따른 것이다. 은행들은 대출을 통해 엄청난 수수료 수입을 올렸고, 지원금의 상당액이 은행에 예치된 것은 물론 대출금 이자 및 원금상환으로 이어짐으로써 사상 최대의 호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통 금융권 출신이 아닌 CPA출신인 케빈 김 행장이 은행을10년간 장기경영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케빈 김 행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MBA를 공부하기 위해 도미했다. UCLA 경영학 석사(MBA), 로욜라 로스쿨을 나와 공인회계사 및 회계‧재정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중앙은행 이사로 은행권에 첫 발을 디뎠다. 중앙은행이 나라은행과 합병되면서 BBCN 뱅크 행장(2011~2016)을 처음으로 마쳤고 2016년 8월부터 뱅크 오브 호프 행장으로서 한인 이민역사상 최초로 자산 100억 달러대 은행을 이끌게 됐다.

단기간내 합병을 통해 리저널뱅크로 성장한 뱅크오브호프가 덩치에 걸맞지 않는 은행 운영으로 비난을 초래하고 있다.

고석화 윌셔 이사장의 뼈아픈 패착

뱅크오브호프의 케빈 김은 행장으로 취임하고선 빠른 시간내 이사장까지 겸직하며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다. 윌셔은행 고석화 이사장은 이사회 만큼은 대주주이자 영향력이 큰 본인이 좌지우지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일개 CPA로 생각했던 케빈 김 행장은 정통적인 금융권에서 배출된 고지식한 행장이 아니었다. 

케빈 김 행장의 판정승은 2019년이었다. 뱅크오브호프는 지난 2019년 5월 23일 열린 이사회를 통해  2년여간 황윤석 이사가 맡아온 이사장 직위를 케빈 김 행장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김 행장은 은행 경영 뿐 아니라 이사회까지 장악하며 확고한 지배력을 과시하게 됐다.

뱅크오브호프는  “이사회는 김 행장이 행장과 이사장을 겸임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은행의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영진과 이사진의 권한과 의무도 보다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설명했으나 은행권에선 케빈 김 행장의 승리라고 점치는 분위기였다. 

사실 김 행장은 뱅크오브호프의 전신인 BBCN 시절인 2014년에도 지주사인 뱅콥 이사장과 행장을 겸임한 적이 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케빈 김 행장은 이사회 장악만 하면 은행이란 큰 기관도 모두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 행장의 이사장 겸임되자 한인은행권에서 예고됐던 일이라며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한인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윌셔 은행과 BBCN의 합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석화 이사장이 물러날 때부터 언젠가는 김 행장이 이사장 직도 겸임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있으리라 예상됐다”라고 말했다.

그 후 고석화 명예 이사장의 눈치를 보든 이사들은 자신을 반대하는 이사를 하나 둘 씩 내쫓는 김 행장의 압박과 회유에 못이겨 백기 투항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고석화 이사장이 받은 내상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활달한 성격으로 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고 명예이사장은 지난 2년간 이사회 참석해서도 거의 발언없이 회의 참석 수준에 그쳤다. 윌셔은행 창립 초기 부터 절대권력을 행사해 온 고 이사장이 ‘쉽게 먹을 줄 알고’(?) 합병했던 뱅크오브호프에서 케빈 김 행장의 예상치 않는 반격에 손 쓸 틈이 없이 당했다는 평가다. 

고석화 이사장은 후진 양성이라는 명목아래 케빈 김 행장에게 이사장자리를 넘겨주었지만 이사회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뼈아픈 패착을 불렀다.

케빈 김 vs 고석화 2R 전쟁 ‘적과의 동침(?)’

이런 양측의 서먹하면서 불편한 관계는 최근 피터 고 전무의 승진을 통해서 화해 분위기로 바뀌었다. 

뱅크오브호프의 지주사 호프 뱅콥은 지난 해 12월 초 고석화 이사장의 아들 피터 고 차석 COO를 COO겸 수석 전무(SEVP)로 승진 발령했다.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데이빗 말론이 지난 해 연말까지 끝으로 은퇴시키고 피터 고 차석 COO를 올해 1월 1일부터 COO겸 수석전무로 승진 발령을 냈다. 은행의 COO, 이사 그리고 프레지던트 직을 겸직하던 데이빗 말론 COO는 은퇴 후 지주사와 은행의 이사직만을 유지하게 되며 케빈 김 행장&이사장이 프레지던트 직까지 겸직하게 됐다.

피터 고의 COO 승진은 사실 1~2년 전에 나왔어야 할 시나리오였다. 피터 고 전무는 콜럼비아 대학과 USC 마셜 경영대 MBA 과정을 거친 피터 고 전무는 뱅크오브호프의 전신 중 하나인 윌셔은행 당시 대출과 크레딧 부서를 담당한 크레딧 분야 전문가로 합병 이후에는 최고크레딧오피서(CCO)를 역임하며 행장 후보군으로 올라왔지만 케빈 김 행장의 견제로 그 활동폭이 제한되었다. 은행의 전반적 경영, 관리 그리고 감독을 책임지는 차석 COO였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상태였다.

개인으로는 뱅크오브호프 최대의 대주주(4백만여주)인 고석화 명예 이사장은 이사회 내부에서는 명분 좋은 명예 이사장이었지, 실제론 다음 이사회에서 잘릴 지(?) 모르는 일개 이사에 불과했다. 

이런 즈음에 지난해 피터 수석전무의 발령 소식은 수세에 몰린 고석화 명예 이사장이 사실상 ‘적과의 동침’을 한 것으로 한인 은행권에서는 보고 있다. 케빈 김 행장이 이미 흔들 수 없는 권력이 된 이상, 김 행장을 지지하면서 다음 행보를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다. 

미주 한인은행 사상 케빈 김 행장과 같은 영향력을 가진 전례는 없다. 최소한 뱅크오브호프 내에서는 이사장과 프레지던트를 겸하게 된 김 행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없다. 

연봉도, 스톡옵션도 모두 행장이 정할 수 있고, 이를 감시하는 이사회는 거수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사회에서는 고석화 명예 이사장이 회의 중간에도 케빈 김 행장의 보여준 리더십을 칭찬하는 등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김 행장도 이런 고 명예이사장에게 “앞으로 피터 고 수석 전무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최고의 아시아계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례하며 분위기를 한껏 치켜 올렸다. 평소 양쪽의 눈치를 보던 이사들도 오랜만에 마음 편히 회의를 마쳤다고 한다.

고석화 명예 이사장은 아들 피터 고 전무가 CCO겸 수석전무라는 승진 발령이란 선물을 받고, 케빈 김은 “행장& 이사장& 프레지던트”라는 최고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니 서로 ‘윈-윈’ 거래인 것이다. 

지난해 연말 새로 승진한 피터 고 수석전무

김 행장의 약진은 중국으로 치면 시진핑 주석이 당 총서기와 군, 국가 주석을 모두 석권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김 행장의 놀라운 행보에는 금융적인 지식보다는 은행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평가 속에 본인 스스로도 놀라는 모습이었다. 

가까운 외대 동문 지인은 사적 자리에서 만난 김 행장이 “나도 이렇게 (이사회를 장악하는 걸) 잘할 줄 몰랐어. 그런데 해보니까 묘하게 내 기질과 잘 맞는 것 같아”라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다음 호에서 계속)

삼성전사 본사 ‘미국 이전설?’

0

한국 법인세 전체 납부장 20% 내고도

이재용 부회장 ‘징역 실형’으로 경영 제약

정권 교체기 마다 ‘오너 리스크’에 시달려

규제 적고 자유로운 미국 이전 카드 만지작


삼성전자가 정치권으로부터 공격받을 때마다 네티즌들이 ‘차라리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라’라는 댓글이 수북이 달리곤 한다. 해외를 나와보니 파란색 로고 ‘SAMSUNG’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없는 애국심도 절로 생긴다고 털어놓는 한국 젊은이들이 많다. 

아직까지 한국은 잘 몰라도, 삼성하면 애플과 경쟁하는 세계 일류의 휴대폰 회사, 아니 그 이상의 IT 회사로 꼽는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자랑스런 삼성이 정권 교체기마다 나오는 본사 이전설은 정치 외풍에서 삼성이 겪는 ‘오너 리스크’ 때문에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국 경제 근간을 기여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말이다. 

삼성전자의 2018년과 2019년의 영업이익은 각각 58조 9000억원과 27조원 였고, 해당 2년간의 법인세 납부액은 25조원 가량이었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한국 전체 법인세 납부액이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70조 9000억원과 72조원 정도인데, 이 기간 삼성전자 한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액은 국가 전체 법인세 납부액의 약 17.5%에 달하는 셈이다.
2020년에는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낸 기업도 역시 삼성전자로, 9조9373억원을 납부했다. 정부가 거둬들인 법인세 총액의 18%에 달한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2021년 삼성전자 법인세 부담률은 27.8%로 경쟁자인 애플(15.4%)의 거의 두 배였다. 이전에는 정반대였는데 2017년 집권한 문재인정부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법인세를 올리는 무리수를 둔 뒤 세율이 역전됐다. 기업 이윤이 3000억원을 넘기면 법인세율이 최고치로 뛴다. 
이러니 일각에서 법인세가 낮고 규제는 없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해외로 삼성 본사를 옮기라는 발칙한 주문이 나오는 것이다. 해외 사업체를 세운 뒤 본사를 이전하거나, 해외 지주회사를 신설해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 등 이론적으론 본사 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 정서는 차치하더라도 과반수 주주 동의를 얻기 어렵고, 이전 비용도 천문학적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건 징벌적 세금도 세금이지만 일자리 정부라면서 되레 고용을 없애는 규제 일변도 정책과 툭하면 CEO를 감방으로 보내겠다며 기업들을 옥죄며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은 반도체 공장은 텍사스 등지에서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에 본사까지도 미국으로 이전하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도체 메모리를 3단으로 적층한 모양으로 설계되어 랜드마크로 떠오른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신사옥.

‘브렉시트’가 논의되던 시기, 영국 기업들이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꽤 있었는데, 특히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의 짐 로언 다이이슨 최고경영자가 다이슨의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겠다고 밝히면서 영국 내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1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여객선 사업체 P&O는 세금문제를 이유로 선적을 영국에서 유럽연합 회원국인 키프로스로 옮기겠다고 했다고 한다.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 범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을 추진하자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홍콩에서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홍콩에 아시아 본부를 두고 있던 다국적 기업들이 탈홍콩을 고려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싱가포르나 대만으로의 이전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한국의 경우 경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나 홍콩과 비교해 볼 때 남북대치 리스크나 강성 노조의 문제, 언어환경 등 기업 입장에서 경영환경이 그리 유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삼성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세율도 낮으면서 규제도 적은 기업하기 좋은 국가로의 본사 이전을 검토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KOTR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해외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 중 절반(49.5%)은 본사를 해외에 뒀다. 삼성처럼 한국에서 기반을 잡지 않은 신생 기업들은 이미 해외에 뿌리를 두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 등에 본사를 두면 기업 운영에 필요한 돈(투자)과 사람(인재), 시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같은 기술과 제품을 가진 기업이라도 미국 시장에 뿌리를 두면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인재를 구하는 데도 유리하다.  

일류 기업은 정치·경제적인 상황들이 아니더라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언제라도 본사를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의 경우에도 본사의 해외 이전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 보다 삼성이란 뿌리 깊은 기업을 한국 정치권이 흔들어 버리는 시도는 이제야 말로 그만해야 할 때이다. 

이준 기자

‘철인’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0

<미스테리 추적>

마라톤 330회 완주 미주 최고 기록 보유자

최고의 샤핑몰 ‘플라자 멕시코’ ‘소스몰’ 개발 주역

전체 부동산 지분 50% 오너십. 자살인가? 타살인가?

채민석 대표(앞줄 가운데)는 미주 한인으로서 풀마라톤 330회 이상을 완주한 철인이었다. 사진은 마라톤 300회 완주를 축하했던 2019년 당시 사진.

지난해 10월 10일 4시. 한인 마라톤클럽 ‘포레스트 러너스’ 멤버인 K는 들뜬 마음으로 눈을 떴다. 

이 날은 아름다운 롱비치 해안과 다운타운을 달리는 롱비치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카풀 차량에 탑승했다. “채 코치님은 안 보이시네요? 벌써 출발하셨나 봐요?” K가 말을 꺼냈다.

평소 같으면 왁자지껄 했을 승합차 안이 조용해졌다. 활달한 성격의 L 코치도, 새벽 잠을 깨우려 농담을 주고 받던 총무도 묵묵부답, 긴 침묵이 흘렀다. 마라톤 완주가 끝나고선 의례적으로 있던 맥주 파티도 없이 코치진들은 조용히 사라졌다. 이 클럽에 조인한지 15여년이 되었지만 이번처럼 이상한 마라톤 대회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 

3일 뒤 신문을 펼쳐든 K 의 입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래서였구나. 코치들은 미리 알고 있었구나’.

신문 헤드라인에는 ‘소스몰 개발 주역 채민석 대표 자살’이란 타이틀이 크게 씌여 있었다. (채민석 대표는 포레스트 러너스 클럽에서 채 코치로 불렸다). 매일 러닝 연습을 같이 하던 코치들을 이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채 대표의 자살 사건에 대해 한인 신문에는 이렇게 보도되었다.

오렌지카운티의 대표적 대형 한인 샤핑몰 ‘더 소스’와 린우드의 ‘플라자 멕시코’ 설립자인 채민석(65·사진) 대표가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검시국에 따르면 채민석 대표는 지난달 18일 애나하임 지역에 주차돼 있는 차량 안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검시국에 따르면 채씨가 숨진 채 발견된 차량 안에서는 총기가 발견됐다. 채 대표는 자신이 설립한 ‘더 소스’와 ‘플라자 멕시코’ 등 대형 샤핑몰들이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하는 등 심한 재정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채 대표는 한 때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부동산 개발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진 인사다. 그는 린우드 스왑밋을 경영했었고 남동생 도널드 채(한국명 채동석)씨와 함께 린우드에 초대형 샤핑몰 ‘플라자 멕시코’를 2009년 완공했다. 부지 10에이커에 입주 업소가 200개를 훌쩍 넘는 플라자 멕시코는 한때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찾았을 만큼 주류사회와 멕시칸 커뮤니티에서 잘 알려진 유명 샤핑몰이었다. 그러나 부에나팍 소재 대형 샤핑몰 ‘더 소스 몰’을 완공하고 옆에 ‘더 소스 호텔’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플라자 멕시코를 담보로 투자비자(EB-5) 자금을 포함하는 과도한 채무를 끌어들였고 이는 심각한 자금난으로 이어졌다. 한인·주류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더 소스 몰’과 ‘더 소스 호텔’에 투입된 자금만 약 3억2,5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더 소스 호텔’이 지난 2월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한데 이어 플라자 멕시코도 지난 4월 챕터11 파산보호를 연달아 신청했으며 ‘더 소스 몰’은 현재 오픈 매물로 시장에 나와 있는 상태다.
12에이커 빈땅 부지에 건립한 더 소스몰의 전경. 채민석 대표의 기념비적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이다.

OC 검시국에서는 애나하임 지역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채 회장이 총상을 입고 숨진 발견되었고, 그 차량 안에서 총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자살로 결론지었다. 

또다른 언론에선 채 대표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

최근 주변 친지들이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채 대표는 20년전에 스트로크를 당해 건강상에 위험 신호를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전후해 우울증세도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강한 성격이라 재활을 위해 마라톤을 끈질기게 연습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끝내 정신적인 무게감을 견디지 못했으며 계속해서 사업까지 힘들어지자 모든 것을 체념한 상황이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채민석 대표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마라톤대회를
섭렵할 정도로 삶과 마라톤, 사업에 큰 애정을 갖고
살았던 철인이었다. 그의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그와 함께 달렸던 포레스트 러너스
마라톤 클럽 회원들이다.

하지만 채 대표는 젊은 시절 발병했던 스트로크를 이기기 위해 마라톤을 입문했지만 그 이후 우울증은 커녕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주위에 힘을 불어넣는 에너지 전도사였으니 위의 설명은 맞지 않는 것이다.

채 대표는 포레스트 러너스 클럽에서 ‘왕 코치’이자 최고의 롤모델이었다. 누구도 그처럼 열심히 달렸고, 마라톤 인생을 즐기는 사람을 없었다. 미국 한인들 중에는 유례가 없을 만큼 330번의 마라톤을 완주한 그였다. 죽음보다도 고통스럽다는 100마일 산악 마라톤을 며칠 간 자지 않고 거뜬히 끝낸 불굴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죽음의 택한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포레스트 러너스 코치들은 채 코치의 죽음을 미리 알고서도 알리지 않은 까닭은 왜 였을까? ‘정신적 지주’였던 채 코치의 죽음으로 인해 그 회원들이 겪을 어마무시한 충격을 막기 위해서 였을까? 아니면 유족으로 부터 미리 당부를 받아서 였을까?

이 마라톤 클럽에 오래 몸담았던 K는 이렇게 말했다.
“ 채 코치님은 긍정의 화신이에요. 그런 분이 자살을 선택했을 리가 없어요. 못 뛰는 회원들이 뛰는 도중에 포기하려고 하면, 끝까지 우리를 챙기며 데리고 갔던 분이었다. 인생에서 실패와 포기를 모르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재정적 압박과 관련해서도, 채 대표는 3여년 전부터 사실상 은퇴를 해서  ‘더 소스’와 ‘멕시코 플라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경영은 동생 도널드 채(한국명 채동석) 대표가 CEO로서 전권을 행사해 왔다. 

특히 미국에서 개인의 파산은 한국처럼 죄인 취급하는 문화가 아니라 사업을 하다보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용인하고 있기에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 

플라자멕시코와 더 소스, 소스 호텔 등 총 5억불이 넘는 엄청난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오너는 딱 두 명이다.  바로 채민석(Min Chae) 대표와 동생 채동석(Don Chae) 대표이다. 이들은 모든 회사의 지분을 50%씩 나눴다. 관리 업체 M+D Properties는 이들 이름의 첫 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들은 플라자멕시코의 홀딩스인 3100 E. Imperial Highway Corp과 LTC Development, Inc 의 지분을 각각 50% 나눴고, ‘더 소스 (The Source at Beach, LLC)와 The Source Office, LLC, The Source Hotel, LLC의 홀딩스인 DMC Investment Holdings, LLC와 관리회사 M+D Properties의 지분도 정확히 50%씩 나눠 소유했다.

다시 채 회장의 자살 시기인 지난 해 9월 중순으로 거슬러 가보자. 

더 소스몰에  1억7천만불의 투자금 환수라는 목줄을 쥐고 있는 EB 5 채권단이 3년간 기한을 준 데드라인이 2021년 5월 말이었다. MD프로퍼티는 팬데믹 상황으로 유예받을 수 없었지만, 이런 불황 시기에 2~3억불을 주고 샤핑몰을 사려는 바이어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팬데믹 상황을 잘 요리하면 버틸만큼 버틸 수 있는 시기였다. 

당시 본인에게 닥칠 개인 파산이 가족들의 재산 (본인 소유의 부동산 및 기업의 지배 구조)을 보호하게 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극단적 선택을 이해하는 데  한 조각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회사는 회사 대로 엄청난 부채가 있었지만, 회사에 자금 조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 갚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남다른 책임감이 있던 채 대표를 죽음의 코너로 몰 수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4700만불의 담보부채가 설정된 더소스호텔과 3억불 가치가 있는 ‘더소스몰’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줘 오너십을 이전받으려는 세력의 타살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워낙 빠르게 사건이 수습되다 보니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채민석 대표는 당시 세탁소와 리커스토어가 대부분이었던 미주 한인사회 이민 초기에  부동산 디벨롭먼트를 시작한 위대한 비전가였고, 커뮤니티의 정신적 지주이자 훌륭한 시민이었다. 그의 죽음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제임스 유 기자

기사 제보: info@sundaynewsusa.com  

피눈물 흘리는 자바 하청업자..2500여명 줄도산

0

포에버 21은 왜 파산했나?

파산 직전에 재산 빼돌리기에 피해 업주들 격분…한국 채권단선 원정환수조 파견

한 때 이민자의 성공 모델로 억만장자가 된 장도원, 장진숙 부부. 지금은 2500여명 자바 하청업자의 도산을 부른 악덕 기업주로 그 이름을 올렸다.

세기적 재앙인 코로나-19가 이 땅을 엄습하던 때가 2019년 연말이었다. 이 재난이 발생하기 3개월전인 9월 “포에버 21의 파산”이란 소식이 터졌다. 국내외 한인들은 물론 전세계 의류계도 놀랐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 한인 장도원-진숙 부부 의 ‘성공신화’가 막을 내린 것이다. 한 때 미국의 400대 부자 대열에 우뚝 섰던 한국계 기업 포에버 21이었다. 특히 장진숙씨는 미국 여성 갑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포에버 21창업 36년만에 “21세기의 영원한 기업”이 “추악한 악덕 기업”의 이미지로 무너져 내렸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포에버 21의 성공 신화를 아는 사람들은 한때 미국 400대 부자 대열에 올랐다가 회사를 한순간에 잃게 된 장도원-진숙 부부가 “악덕 기업주”라는 지적을 받는 초라한 결말에 충격을 받았다. 파산 직전 사기행각에 가까운 행태로 한국 14개 업체들은 900억원 채권을 물렸고 ‘챕터 11 ’ 기간에 수천만불 채무를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되자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급기야 한국 피해 벤더들은 ‘한국채권자협회’를 결성해 행동대원을 미국에 보낸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평소 신앙심이 투철한 장도원 부부는 출석하던 교회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잠적한 상태다. [탐사취재팀]

포에버 21이 파산 신청한지 5개월 만에 창업자 주인도 바뀌었다. 새 주인은 CEO가 다니엘 쿨르(Daniel Kulle)로 바뀌었고, 법인체도 ABG 그룹(Authentic Brands Group),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Simon Property Group), 부룩필드(Brookfield Properties) 등 3개 회사가 포에버 21을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에버 21은 지난 2019년 9월 30일 파산 신청을 했다. 파산 1년전인 2019년 8 월 블룸버그 통신은 이미 포에버 21의 파산 신청 가능성을 보도했다. 또 그 당시 아리아나 그란데 측으로부터 저작권, 상표권 침해로 1000만 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한 상태였다. 파산직전 2019년 9월 25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의 장기화로 매출이 부진해 진다는 명목 하에, 포에버 21이 홍콩의 마지막 매장을 폐쇄하고 홍콩지사를 청산 하는 방법으로 완전히 홍콩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날이 갈수록 재래식 매장에서 구매하는 고객들이 줄어들고 젊은이들 취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지점을 낸 것에 비해 관리를 제대로 못해 전세계 매장들을 전부 철수하고 미국 내의 178개 매장도 폐쇄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온라인 쇼핑몰은 그대로 유지하고 미국 내 남은 매장들과 남미쪽 매장들은 그대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직원 1,170명을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미국내 언론에서는 포에버 21 파산 이유로 온라인 시대에 지나치게 오프라인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하고, 저작권에 무지한 것을 지적했다.뉴욕 타임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경영부실화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포에버 21의 본사가 있는 LA 지역 신문인 LA타임스도 왜 파산을 했는지를 분석했다.

온라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끝내 쓴 맛

공통점은 경영의 부실이었다. 그리고 신뢰를 잃은 것이다. 전형적인 가족기업으로 시작했고 규모가 작을 때는 괜찮았으나, 기업 규모가 커짐에도 가족기업의 경영체제를 유지했고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전문가를 영입해 조언을 받았음에도 그 조언을 무시하기 일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업원에 대한 대우도 열악했다. 국내 언론이 지적한 공격적 확장정책의 부실은 바로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 아울러 두 딸들이 회사 핵심 임원 자리에 올라 경영에 참여한 것도 미국인들 눈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던 듯하다. 그 와중에도 사장은 직원들 식대 및 교통비 영수증을 체크하고 있었다고 한다.

포에버21의 파산보호 신청은 전혀 생각치도 못한 분야에서 파고를 일으켰다. 포에버 21의 계열사 투 캐피탈(Too Capital)이 TV조선 의 지분의 15%를 가져서, 21.9%를 가진 조선일보 다음가는 2대 주주였다. TV조선 입장에선 자다가 폭탄 맞은 격이다. 포에버 21은 국내에 2008년 진출하여 명동과 홍대, 가로수길, 인천 스퀘어원에서 매장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파산 신청 이후 모두 철수했다.

포에버 21 파산 당시 채무자들에게 3억 4700만 달러 빚

포에버 21의 파산 신청과 함께 장도원 회장의 상도의 파탄으로 국내 밴더들에게 뼈아픈 고통을 주었다. 포에버 21의 파산 신청은 ‘챕터 11’ 신청이다. 한마디로 영업을 하면서 채무 지불을 임시 중단하고 회생하여 갚겠다는 조건이다. 파산 신청 당시 한국 의류 밴더 14개사에게 장대표는 챕터 11을 통해 회사를 회생시켜 900억원 (당시 미화 약 9,000만 달러) 채무를 갚겠다면서 이 조건에 불응할 때는 채무 변제를 약속할 수 없다고 하자 밴더들은 이 말을 믿고 파산 신청서에 동의했다.

하지만 포에버 21은 파산 신청 후 2020년 2월 돌연 주인이 바뀌어 버렸다. 포에버 21이 가장 많은 매장 임대료가 묶인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 컨소시엄이 8,100만 달러로 인수하면서 부룩필드 그룹, 또 다른 ABG 그룹 등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에 밴더들은 새로운 주인에게 채무를 이행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밴더들은 두번씩이나 포에버 21에게 당한 것이다. 장도원 회장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법적으로 파산을 관리하는 연방 파산법정에 사전에 확인하고 단단히 계약을 했었어야 했다. 할 수 없이 한국 채권자 그릅 은 미국 법정에 소송으로 피해 보상을 받는 절차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밴더들은 장도원 회장 부부가 미국에서 어떻게 밴더들을 이용했는지 잘 알았다면 대처를 할 수 있었지만, 포에버 21의 성공신화의 신기루에 홀려 버렸다.

한편 파산 신청한 창업주인 장도원·장진숙 부부는 그들의 자녀들에게서 1,000만 달러 거액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LA타임스의 지난 2019년 10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그들의 두 딸인 린다 및 에스더 장의 신탁자금으로부터 지난 2015년 각각 500만 달러를 2%의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차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들 두 딸은 포에버21의 파산 보호 신청에 따른 제출서류에 부모 회사의 무담보 채권자로 명명돼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이와 같은 가족간의 대출 세부사항은 포에버21의 사업규모 및 인지도와 비교해 볼 때 회사 비즈니스 거래관계에 있어서 철저한 ’가족 경영’ 식으로 운영해왔다는 사실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munich 매장 오픈하는 날 문 앞에 몰려든 고객들. [Munich, 2013년 10월]

우연일까? 1000만 달러 대출 금액은 2005년부터 2015년 사이에 200여 개의 매장을 론칭하면서 나타났던 포에버 21의 실패한 글로벌 팽창사업과 맞물려 있다. 그런 팽창 사업은 아버지인 장도원 대표에 의해서 추진됐었다.

법원서류에 따르면 그 매장들은 대부분이 3만5000 스퀘어 피트 이상으로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규모가 너무 컸다. 이로 인해, 포에버 21의 공급망은 문제가 생겼고, 남가주에서의 성공신화가 전세계로 특히, 아시아에서는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또한 그러한 사세 확장의 끝 무렵에 새 매장들은 137%의 실적 감소를 기록하고 있었다. 포에버21측은 “신속하게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 을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켰고, 그로 인해 전 세계 지역에서의 수익성에 해를 끼쳤다”고 시인했다. 이러한 사세 확장의 실패 속에 회사를 구하기 위해 창업주 가족들이 나서도록 만들었고, 급기야 장도원 대표는 자신의 계좌에서 투입한 1000만 달러와 두 딸로부터 빌린 각 각 500만 달러씩 1000만 달러를 합친 대출합의서를 2015년 1월에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장 규모가 너무 크고 유행도 못 따라가 공급망 부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9년 9월 포에버 21이 파산 신청을 했을때 1개월 후 이 회사의 명암에 대해 보도했다. 회사의 설립자인 장도원씨와 장진숙씨, 그리고 그들의 두 딸의 사진과 함께 “영원히 노력하는 것: 용기, 결단력, 그리고 열정의 이야기”와 같은 표제 등으로 많은 언론들이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1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하여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세운 장씨 부부의 성공을 강조했다. 두 딸 모두 회사의 최고 경영진의 한 구성원이라고도 소개했다. 포에버 21성공은 미국에서 정말 독특한 성공 스토리였고, 평범한 가족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절정기에는 40억 달러 이상의 연간 매출을 올렸고, 전세 계 수백개의 스토어에서 43,000명 이상의 직원들을 고용했다.

포에버 21 종업원들이 회사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매장 앞에서시위하고 있다.

하지만 파산 신청 후 40개국에서 철수했으며, 미국 내 점포의 30% 이상인 199개까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회사의 임원 3명을 포함한 전직 직원 6명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를 가졌으며 어떻게, 왜 파산에 이르게 됐는지를 분석했다. 포에버 21의 전직 직원들과 업계 전문가들은 장도원-진숙 부부 일가의 고립된 경영 방식이 파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거래 운영의 미숙과 최근 몇년 동안 회사의 상품화 전략도 부실하였다.

미시간 로스 경영대학원의 에릭 고든 경영전문가는 창업자의 입장에서 자만심은 꽤 흔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지속했을 경우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립적인 가족운영만을 고집할 경우 회사 전반 중요 정책을 점검해 줄 이사회도 없었고, 그들에게 현실을 점검해 줄 경영 분석가도 없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포에버 21의 파산 신청은 수십년 동안 가족 중심의 비밀리에 운영되어 온 소매업체로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이 회사의 실수는 최근 수년간의 소비자 취향과 쇼핑 트렌드 등과 업계 전반의 변화에 대하여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회사, 판매상, 쇼핑몰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첬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포에버 21 창사 초기부터 장씨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로 건물주와 판매자 관계를 감독하고 있었다. 장씨는 디자인과 상품화를 이끌었다. 포에버 21 대표 장도원 회장은 LA에 자리 잡은 본사 꼭대기 층에 앉아서 세상을 모두 자기 것처럼 보면서 살았고, 맨 아래층에서는 부인 장씨가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고 전직 직원들은 말했다. 큰 딸인 린다 장은 상무이사이고 그녀의 여동생인 에스더 장도 상무이사다.

포에버 21에는 장씨 가 족 이외에 또 다른 커플이 있었다. 포에버 21의 사장이자 납품업자였던 알렉스 옥과 그의 아내가 함께 일하고 있다. 장진숙 공동대표와 옥 사장의 부인은 포에버 21의 의류 스타일을 결정하는 장본인으로 “ 두 여성”으로 통하고 있다. 장씨부부는 포에버 21의 지분을 99% 소유하고 있는 반면, 옥씨 부부는 1%를 보유하고 있다.

장 씨 가족은 경쟁자인 다른 의류 패션의 라이벌과 달리 포에버 21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직 직원 3명은 파산 당시만 해도 장 씨가 직접 직원들의 인건비를 결재하고 임원들의 점심값이나 우버 승차 영수증에 대해 따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장씨 가족은 사업이 확장되면서 경력직 임원 채용 욕구와 외부인에 대한 불신 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직원들은 말했다. 이들 전직 직원들은 최근 몇 년간 포 에버 21은 사업 부분을 점검하기 위해 전문가를 충원했으나 이후 신기술에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대해서 회사 상층부는 그들의 조언을 잘 듣지 않았다고 토로 했다.

포에버 21의 매장 모습.

마거릿 코블렌츠 전 샬럿 러스 전자상거래 담당 이사는 “가끔씩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을 고용했을 때, 우리 는 그들이 사업 실적의 총체적인 부분을 절대 볼 수 없고 특정 부문에 대한 보고만 제공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의류 경쟁사들은 포에버 21을 “단일적이고 불가해한 것” 이라고 덧붙였다.

수 백 개 매점 운영을 위한 부동산 운영 관리에 부실운영

무엇보다 포에버 21은 부동산 분야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불경기 전후 몇 년 동안, 회사는 공격적으로 확장했고, 한때 파산한 백화점인 머빈과 시어스, 삭스가 점유했던 동굴 같은 공간에 거대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기로 결정했다. 한 부동산 대표는 2011년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 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커다란 스토어를 갖는 것은 언제나 장씨의 꿈이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스토어에 새로운 상품으로 채우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런 시스템이 쇼핑몰에 혼란을 주기 시작하면서 포에버 21에 장기적인 부담을 안겼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머빈의 점포 임대 계약 중 7개는 2027년 또는 2028년까지 만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 났는데, 이는 일반 적인 임대 계약 기간보 다 긴 것이었다.

회사가 파산 신청을 했을 때, 장 대표의 딸 린다 장 상무이사는 “세계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외에도 이 진열장들을 채워야 하는 것은 우리 조직에 스트레스를 주었다” 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쇼핑몰 거래의 변화와 전자 상거래의 증가를 과제로 언급하며 이번 파산은 “우리 측의 전략적 운용”에서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라고 말했다. 경영 전문가 고든은 “포에버 21의 문제는 쇼핑몰 건물이 아니다. 문제가 있던 쇼핑몰 건물에서 더 일찍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2명의 전직 직원들은 “장 대표가 매장 개수가 500개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직접 임대 계약을 맺고 모든 매장을 설계하려고 했다”라고 회고하며. “실적이 저조한 매장을 폐쇄시키는 것을 싫어했고, 때로는 동일한 상가에서 다른 곳으로 매장을 이전시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포에버 21은 2005년 7개의 해외 매장에서 10년 후 262개로 급증하면서 현지 전문 지식이 없이 비싼 가격인 대규모 해외 매장에도 뛰어 들었다. 두 명의 전직 직원은 체인점이 종종 현지 노동법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일부 유럽 국가의 고객들이 미국 소비자들보다 더 일찍 겨울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등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한 직원은 독일 내 상점들이 일요일마다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독일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이 스웨덴에 본사를 둔 H&M과 스페인 기업인 자라 (Zara)가 텃세를 놓고 있다는 사실도 간파하지 못했다.

“현지 전문지식 없이 대규모 해외 매장에도 뛰어 들다”

포에버 21은 한 보고서에서 2015년 현 재 대부분의 해외 입점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캐나다, 유럽, 아시아에 있는 매장들은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월평균 10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포에버 21의 매장들의 연간 점유비는 무려 4억 5천만 달러였다.

해외에서의 경영 실책이 분명해졌지만, 장씨 일가와 그의 부동산 거래 상대자들은 훨씬 더 많은 미국 상점에 투자를 했다. 2015년의 내부 플레이 북은 35세 이하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F21 레드”라고 불리는 새로운 쇼핑몰 체인에 대한 소매업체의 계획을 묘사했다. 1.80달러짜리 캐미솔과 7.80달러짜리 청바지는 같은 해 미국에 진출한 아일랜드 소매업 체 프리마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플레이북을 보면 6개 매장이 이미 문을열었고, 포에버21은 그해 일반몰을 포함 해 35개의 추가 오픈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나 F21 레드를 기획했던 직원들에게는 놀라움을 주었다. 2017년까지 몇몇 새로 운 F21 레드 매장은 회사 전망치보다 약 50% 낮은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내부 판매 보고서에 나타났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포에버21 창업자 장도원회장과 두 딸 린다(왼쪽)와 에스터

그해 포에버 21도 뷰티 체인 라일리 로즈(Riley Rose)를 선보였는데, 이는 회사의 다음 성장 물결로 주목받으며 한국 스킨케어 제품의 붐을 기회로 삼으려 했다. 그것은 장 회장의 딸 린다 장과 에스더 장이 기획했다고 하는데, 파산 신청에서 “획기적”인 재생 계획이라 고 불렸다. 하지만 전직 직원들은 이들 자매의 근면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파산 신청 다음해에 15개 점포를 보유한 라일리 로즈는 고가몰에서 고가의 도박이었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고 말했다.

포에버21은 2017년에 재고를 너무 적게 사들였다가 2018년에는 너무 많이 사들였다. 포에버 21은 한때 약 6,400명의 정규 직원과 26,400명 의 파트타임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는 파산 과정 내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포에버 21은 현재 미국, 멕시코, 중남 미 등으로 진출해 있는 자사의 상품화 방식을 바꿀 것이며 전자상거래 판매를 사업의 16% 이상으로 늘리고 기타 비용 절감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가 파산신청을 제기했을 때, 그 회사는 채무자들 에게 3억 47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포에버 21의 이름처럼 영원히 21세 처럼 빛날 줄 알았던 장씨 일가의 기업이 50 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진한 것이다.

<포에버21 사기 피해자 모임>이 공동대응합니다. 

포에버21에게 사기를 당해 수십년간 피땀 흘린 사업을 접은 뒤 잠못 이루는 피해업주들은 아래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사기피해자 협의회: forever21victims@gmail.com
피해 관련 기사 제보: (323) 825-9009 (text only) 

‘LA 소송꾼’ 조경구 IPA 도전

0

서울메디컬그룹 차민영과 ‘29년전’ 악연

한인타운 부동산 큰 손이자 ‘LA 소송꾼’으로 불리는 조경구 신경내과 전문의가 서울메디컬그룹을 상대로 연초부터 도전장을 냈다. 조 전문의가 이끄는 부동산 개발사 ‘미타 그룹’은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4가와 버질에 위치한 슈라이너 어린이 병원이 패사디나로 이전하면서 비게 된 병원 건물을 2017년 2,405만달러에 매입했으며 그동안 메디칼 센터 설립을 위한 LA 시정부 승인절차와 준비작업을 해왔다.

조 전문의는 기존 슈라이너 병원을 리모델링 하면서 ‘제네바 메디컬 센터’으로 명명하고 이 센터를 중심으로 별도의 메디컬그룹( IPA)를 추진 중으로 알려지면서 서울 메디컬 그룹과 한미 메디컬 그룹 등 양대회사로 나눠진 메디컬 시장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조경구 전문의는 1993년 차민영 박사와 소송전으로 맞붙은 전력이 있고, 이를 통해 서울메디컬그룹 발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된 바29년전 악연이 어떻게 승부가 날 지 주목을 받고 있다. <탐사보도팀>

LA 한인타운 4가와 버질에 위치한 구 슈라이너 어린이 병원(3160 Geneva St. LA)을 조경구 전문의가 인수한지 3년 뒤인 지난 2020년 11월, 시니어 아파트를 포함하는 종합 메디칼 센터로 재개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시니어 어시스턴트 리빙 센터(Senior Assistant Living Center)’를 기획했으나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자 종합 메디칼 센터로 전환했다.  

조 전문의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류사회 메디컬 센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남가주 한인사회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종합 메디칼 센터로 2020년 9월 오픈할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2022년 2월 현재 아직 공사 진행형 중이다. 다시 올해 말 목표로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이다.  

조경구 신경내과 전문의가 추진하는 ‘제네바 메디칼 센터’는 대지면적 2.25에이커에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실내 면적만20만스퀘어피트에 달해, 같은 버질 길에 있는 서울메디컬그룹 소속의 메디컬 빌딩들과 비교해 규모와 시설이 훨씬 낫다. 그런데도 테넌트 모집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조경구 신경내과 전문의.

조경구, 28여건 소송 연루돼  ‘LA소송꾼’ 이미지

‘소송 당할라’ 의구심에 의사 테넌트 모집 지지부진

그 첫번째 이유는 조경구 전문의가 갖고 있는 ‘소송꾼’ 이미지다. 조 전문의가 ‘미타 그룹’과 공동으로 글렌데일 쇼핑몰 개발 프로젝트에 파트너로 참여한 L 씨는 결국 프로젝트 완성은 커녕 소송으로 귀결됐다. L씨는 “조 박사가 제이미슨 프로퍼티의 공동 파트너라고 해서 믿고 투자했는데, 개발 경험도 전무하고 내가 내놓은 투자금은 경비처리로 대다수 처리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말했다. 소송 당사자 간 입장은 서로 다르겠지만 그 ‘끝’이 좋지 않다면 시작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본지가 파악한 로스앤젤레스 법원 자료에 따르면 조경구 신경전문의는 지난 20년간 28건에 달하는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 그중15건이 본인이 소송을 낸 것이며, 13건은 본인 또는 조 전문의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임금 체불, 성희롱,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고발을 당한 것이다. 

특히 본인이 소송을 제기한 15건 중에는 본인의 부동산 파트너를 포함해  본인의 부동산을 사고 판 부동산 에이전트, 보험 담당 에이전트, 회사 고문 변호사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소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조경구 돈을 벌려면 소송당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사실로 드러났다. 조 전문의가 소송을 제기한 부동산 파트너 중 대표적인 예가 본인이CEO로 있는  미타 그룹(Mitaa Group)의 기반을 만들어준 부동산 파트너인 제이미슨 프로퍼티(회장 데이빗 이 회장)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알려진 대로 데이빗 이 회장과는 처남지간이다. 제이미슨을 상대로 소송하게 된 배경을 묻는 기자에게 조 전문의는 “데이빗 이 회장이 갖고 있는 투자자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라고 말해 주위를 경악시킨 바 있다. 

조 전문의는 본인 소유의 올드랜치 컨트리 클럽에서 성희롱 건으로 소송이 발생하고 그 합의 과정에서 배상액이 발생하자 보험사와 담당 에이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써니 권 에이전트는 보험 가입 초기에 프리미엄 보험료를 낮추지 않으면 계약않겠다고 해서 커버리지를 낮췄고 충분히 고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이 발생하자, 그 책임을 본인과 보험회사로 돌린 것에 대해 무척 억울해 했다. 조 전문의는 자신회사의 고문 변호사와도 소송을 몇 차례 벌였다. 이같은 분쟁이 발생한 것은 승소 커미션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키고는 소송 당사자와 합의 직전에 고무 변호사를 해고하고 직접 소송 합의를 하며 커미션을 아끼는 방법이다. 그중에서 압권은 서울대 공대 출신인 자신의 친동생과 임금 체불 문제로 법정에서 멱살 잡이까지 간 적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차민영 회장이 1993년 조경구 전문의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조경구 전문의는 VIP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고, 서울대 의대 후배 였던 차민영 박사가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되며 법원 기록에는 소장 기록이 남아있다. 

차민영 서울메디컬그룹 회장.

차민영 박사는 조경구 박사가 운영하던 VIP 클리닉을 벗어나, 1993년 <서울메디칼그룹>이라는 독립의료법인을 설립하여 미주 한인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후 서울 메디컬 그룹은 남가주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하와이, 애틀랜타 등 미국 7개 주 10개 도시를 커버하는 한인사회 초대형 메디컬 그룹으로 성장했다. 주치의 숫자만 400명, 전문의 4,000명 등 풍부하고 다양한 의사 네트워크을 가진 완벽한 의료 그룹이 되었다.

전국 규모의 대형 메디케어 보험회사인 웰케어로부터 4년 연속 최우수 메디컬 그룹으로 뽑혔고(5 스타), 올해는 휴매나로부터 역시 5 스타의 최우수 등급을 받아 2위 업체인 한미메디컬그룹과도 우위를 드러낸다.

대형 메디케어 보험회사인 웰케어로부터 4년 연속 최우수 메디컬 그룹으로 뽑혔고(5 스타), 지난 해는 휴매나로부터 역시 5 스타의 최우수 등급을 받아 2위 업체인 한미메디컬그룹과도 우위를 드러낸다.

“차민영은 실력없는 서울대 의대 후배” 폄하

재력 등에 업고 전문의 그룹과 손잡을 수도

이런 마당에 조경구 전문의가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차민영은 내 밑에서 일했고, 실력도 없는 의대 후배”라고 폄하하고 본인이 직접 독립 메디컬그룹을 추진한다고 해서 성사될 일이 아닌 것이다. 

수억 불 규모의 부동산 자산이 있는 본인 재력만 믿고 일을 벌린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경구 전문의는 제이미슨 프로퍼티의 데이빗 이 회장과 처남 사이다. 그것은 데이빗 이 회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데이빗 이 회장은 그를 추종하는 투자자 그룹이 견고하다. 

이에 반해 조경구 전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워낙 돈을 쓰지 않는 수전노로 소문이 나 있고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용산고를 졸업했는 데 ‘용산고 동문회가 포기한 유일한 동문’이라는 말이나올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다. 

수년 전 조 전문의가 살던 벨에어 저택에서 열린 용산고 동문회 파티에서 행사 주최측 임원에게 “당일날 각자 부부가 팟럭(potluck) 음식을 갖고 와라”고 얘기해 동문 와이프들로부터 성토를 받았고, 파티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동문에게 “앞으로 이름 부르지 말고, 날 부를 때는 닥터 조라고 불러라”라고 면박을 준 사건이 발생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그 이후 동문회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조 전문의는 행사에서 배제하자는 내부 원칙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조 전문의는 이를 독립메디컬그룹(IPA)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IPA는 Independent Practice Association(독립의사협회)의 약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메디컬그룹을 뜻한다. 하지만 메디컬그룹은 일반적으로 한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그룹이며 IPA란 여러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독립된 계약직 의사들의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남가주에는 서울메디컬그룹(SMG),한미메디컬그룹(KAMG), 센터메디컬그룹(CMG) 등 한인 의사들로 구성된 IPA가 여럿 있다. 
메디컬그룹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 의료시스템상 의사 개인이 보험회사와 보험 지정 계약을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의사들이 모여 메디컬그룹을 만들고 의사 개인과 보험사, 의사 개인과 병원을 연결하고 있다. IPA는 소속 의사들을 대변해 보험사와는 지정 계약을 맺고, 병원과는 업무협약 계약을 맺어 의료행위를 하게 된다. 

같은 버질가에 있는 서울메디컬그룹의 아성에 조경구 전문의는 독립 메디컬그룹을 구성해 보려 하나 여의치 않다.


따라서 메디컬그룹이 커져야 환자를 위한 더 많은 서비스를 보험회사와 병원에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더 많고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PO 플랜은 의사나 병원, 메디컬그룹의 선택에 제한이 없지만 HMO 플랜은 주치의와 주치의가 속한 IPA를 정해야 하는데 우선, 자신이 가입한 플랜의 보험회사와 IPA가 계약을 맺었는지, 즉, 자신의 보험 플랜을 받는 IPA인지 확인해야 한다. 
전문의를 방문하려면 주치의의 리퍼(refer)를 받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전문의 방문까지 대기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또 자신이 원하는 전문의가 주치의와 같은 IPA에 속해 있지 않으면 리퍼를 받을 수 없다.  

서울메디컬그룹이나 한미메디컬그룹은 자신의 회사가 더 빠른 리퍼를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주치의인 내과의사가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이에 소외된 전문의들은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낮아지고 업무량은 늘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메디컬그룹 표면적으론 외부 대응 자제

혹시나 버질 메디컬센터 근간 흔들릴까 촉각

조 전문의의 IPA 움직임에 서울메디컬그룹은 표면적으로는 외부 대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부 단속에 힘쓰고 있다. 버질 길에 위치한 제나바 조 메디컬 센터와는 서울메디컬 빌딩과 불과 1~2블록 차이에 있다. 서울메디컬그룹은 기존의 오피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닥터 오피스로 꾸며서 환자들의 동선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제네바 조 메디컬센터는 병원으로서는 최적지이며,  다른 메디컬그룹이나 제3의 세력과 손잡고 본격적으로 의사들을 모집하게 될 경우에는 힘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조 전문의가  UCLA 임상교수로 활동하고, USC와도 협력관계를 하게 될 경우엔 환자들이 이동하게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한편, 시니어 메디컬 시장에는 기술과 접목된 플랫폼이나 서비스가 속속 진출하고 있다. 최근 기술 플랫폼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시니어고 메디컬(SeniorGo Medical)은 현재 메디컬그룹 한 두곳과 협의를 통해 통합 마케팅을 협의 중에 있다. SeniorGo Medical의 디지털 플랫폼은 환자 경험을 개선하여 환자의 건강유지에 촛점을 맞추고 있고, 통합결제시스템으로 예약을 시작으로 진료, 처방전 택배서비스, 커뮤니티 사용, 어플리케이션 네트워크 사용등 모든 시스템을 통합된 결제시스템으로 사용가능 하다. 또 모바일과 디지털 플렛폼을 이용하여 항상 seniorgo Medical과 연결상태를 유지하여 의료진들의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또한 의사는 언제 어디서나 환자 데이터에 엑세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위급사항시 환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플랫폼 위에 오프라인에서 김연자, 남진 등 가수 공연을 통해 환자를 유치하고 의사 네트워크를 확장시킨다는 전략이다. 

또, 카디오 원격진료 서비스도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원격진료(RPM-Remote Patient Monitoring) 서비스는 바이탈이 정상밖으로 높거나 낮으면 모니터링 담당자가 전화 상담으로 상황을 점검한다. 기기는 무료로 대여하며, 서비스 사용료 및 취소 비용도 없다. 메디케어 PPO만 받고 HMO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조 전문의가 추구하는 독립메디컬센터가 무위로 끝날 지, 성공해서 서울메디컬그룹 아성을 위협하는 세력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인사회에서 억울하게 소송을 당했거나 피해사실이 있는데도 소송비용이 부담스러워 제기하지 못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법률지원을 할 변호사들이 대기중 입니다. 본인의 피해사실을 아래 이메일로 보내시면 연락드립니다.

info@sundaynewsusa.com

문, 대선 앞두고 윤석열과 ‘적폐 논쟁’

0
[¼­¿ï=´º½Ã½º] ÀüÁøȯ ±âÀÚ = ¹®ÀçÀÎ ´ëÅë·ÉÀÌ 8ÀÏ ¿ÀÀü û¿Í´ë ¿©¹Î°ü¿¡¼­ ¿µ»ó ±¹¹«È¸ÀǸ¦ °³È¸ÇÏ°í ÀÖ´Ù. 2022.02.08. amin2@newsis.com

“검찰총장 때는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 했단건가”
문 대통령, ‘정치적 중립’ 깨고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영상 국무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현 정권을 적폐 청산 수사 대상으로 비난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을 향해 강하게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선거 중립을 지켜왔던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강하게 발언을 한 것은 윤 후보의 비판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가 현 정부를 적폐로 예단해 정치 보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자 강력하게 경고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박 수석은 브리핑 이후 문 대통령의 발언 배경이나 이유 등에 대한 질의응답도 받지 않고 연단을 내려갔다.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수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검찰개혁 미완의 ‘책임’이 있는 윤 후보가 촛불 혁명으로 세워진 현 정권을 적폐 청산 대상으로 치부한 데 대한 강한 불만으로 읽힌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정치적 중립’을 깨뜨릴 만큼 수용 가능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실제 지난해 7월 대선 경선 레이스 시기부터 청와대 참모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여러 차례 강조한 뒤, 스스로도 관련 발언을 삼갔다. 청와대 차원에서 간혹 대응은 있었지만 수위는 조절됐다.

문 대통령은 그에 앞서 윤 후보가 야권 후보로 대두되던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고 발언한 부분은 자신의 당부를 저버린 윤 총장의 ‘모순’을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를 검찰총장로 임명할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 개의치 말고 엄정하게 비리를 척결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도리어 윤 후보가 현 정권을 검찰개혁을 방해한 적폐로 돌린 것에 대한 분노라는 해석이다.

아울러 윤 후보가 전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그러는데 저는 사기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제1야당 후보에 대해 직접 강한 비판을 하면서 대선 정국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 지지층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이 후보를 지지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윤 후보는 지난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 시 검찰공화국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여권의 프레임”이라며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고, 매우 불쾌하다”고 입장을 밝혔고, 여권은 “정치보복 선언”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내가 한 건 정당한 적폐 처리이고 남이 하는 건 보복이고, 그런 프레임은 맞지 않다”고 반박하며, 되려 청와대를 향해 “불쾌할 일이 뭐 있겠냐”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될 게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나”라고 했다.

안철수 “단일화 고민 안 해…당선 위해 출마”

0

“2012년 대선 양보? 정치나 사람에 대한 부분 처음이라서”

[일요신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다”며 “제가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러 나왔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8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안철수 후보는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저는 당선이 목표이지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DJP(김대중+김종필)’ 방식의 공동정부를 언급한 데 대해 “양당 어느 쪽이 집권해도 여전히 내각도 국민도 반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라며 “제가 유일하게 실질적인 국민통합 내각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이고 좌에 있던 사람이든 우에 있던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널리 중용해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동정부·통합정부를 제안해 오는 데 대해선 “현재 기득권 양당에서 주장하는 공동이나 연합(정부) 이런 쪽은 두 정당 구성원들 내부로 국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전 국민 통합내각이라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로 새로운 정권에 참여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게 현실 정치에 맞지 않나’라는 질문엔 “어떤 제안을 받은 적 없는데 제가 왜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겠나. 처음부터 고민 안 하고 시작했다. 끝까지 갈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고 답했다.

또 “제가 많은 분들을 뵐 때마다 ‘이번에는 도중에 그만두지 마라’ ‘이번에도 단일화 할 것이냐’ 말씀하시는데 둘 다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2012년 대선 때 한번 양보한 것 외에 저는 모든 선거를 완주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잘못된 기득권 정치세력의 이미지 조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2년 대선 때는) 정치나 사람이 처음이라서 너무 선의로 대했구나 싶었고 저 스스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제가 단일화를 안 하겠다고 하면 100% 안했다”고도 부연했다.

아울러 안철수 후보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선 “문재인 정권 동안 정치방역으로 제대로 잘 못한 것들이 많다. 백신은 한 달 안에 전국민이 맞는 게 제일 효과가 좋은데 우리는 백신을 못 구해서 6~9개월 질질 끄니까 돌파감염이 생기고 효과가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초기에 우리나라가 백신개발능력이 없는데 있는 나라처럼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연금개혁과 관련해선 “보험료율을 높이는 건 지속가능성을 위해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지금보다 더 낮출 수는 없고 그렇다고 높이기도 힘들다”며 “2028년 소득대체율이 40%가 되는데 그 선을 최소한으로 두고 유지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진단했다.

‘불씨는 살아 있다?’ 젖은 장작에 부채질 중

0

위기의 이재명, 안철수와 단일화 셈법

 “윤안(윤석열·안철수) 단일화보다 이안(이재명·안철수) 단일화….” 
단일화의 추억이 여권 대선 한복판에 다시 소환됐다. 핵심은 ‘이안 연대’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확장판이다. 이안 단일화를 잇는 중간 연결고리는 대연정과 개헌이 될 전망이다. 복선은 깔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 7인회 백의종군이 대표적이다. 이안 단일화 성사를 위한 삼각편대와 ‘김종인 의중’도 변수로 부상했다. [일요신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2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DJP, 노정 연합 벤치마킹

송영길 대표 메신저 역할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물꼬 튼 이안 단일화는 한층 거세진 ‘이재명 위기론’과 맞닿아 있다. ‘트리거(방아쇠)’는 ‘3·9 대선 판세=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판박이로 규정한 당 내부 보고서였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자체 분석한 이 보고서 핵심은 4·7 재보선 계기로 해체된 ‘탄핵 유권자 연합(중도+진보)’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여기에 하나의 변수만 추가되면 ‘여권 필패’라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하나의 변수란 다름 아닌 윤안 단일화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보수 대연합이 단행된다면, 승부는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현재 여론조사 수치를 종합하면, ‘윤석열 4 vs 이재명 3.5 vs 안철수 1.5’ 구도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지지도 합(55% 안팎)은 정권교체 여론과 비등하다.
이 수치는 4·7 서울·부산 보궐선거 때의 여야 득표율과 엇비슷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57.50%로, 여당 후보였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39.18%)을 18.32%포인트(p) 차로 꺾었다. 부산시장 대결에선 더블스코어 차(박형준 부산시장 62.67% vs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 34.42%)가 났다. 당시 보궐선거 판을 바꾼 것은 20% 안팎 지지를 받던 안철수 후보의 보수 단일화였다. 여당 한 의원도 “야권 단일화 가능성이 낮다고 본 여권 지도부의 실책”이라고 했다. 한 당직자는 “당시 김종인 체제에서 국민의힘이 안 후보와 손을 잡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앞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이안 단일화의 포문을 연 것도 보수 단일화 위력과 무관치 않다. 송 대표는 지난해 연말 세 차례나 안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국민의당은 “헛꿈을 꾸지 말라”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송 대표는 “(양자가)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12월 26일)→안철수 미래 어젠다를 수용할 마음의 자세가 돼 있다(12월 27일)→거절 강도가 높지 않았다고 본다(12월 31일)” 등의 발언으로 ‘이안 단일화 불가피론’을 설파했다.

보수 대연합 최종 무산되면

이-안 단일화 문 열릴 수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8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본부장단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송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송 대표가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송영길 체제가 유지되는 한, 안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송 대표는 지난해 안 후보에게 단일화 요청 차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송 대표가 이안 단일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안 대표는 송 대표 제안에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진보+보수 단일화’ 성공 사례가 있지 않나” 민주당 한 인사의 말인데 실제 그랬다. 보수진영과 손을 맞잡았던 제15∼16대 대선은 현재 민주당이 처한 위기론과 여러모로 맞물려 있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후보 교체론’에 시달렸다. 
‘DJ 불가론’이 당시 야권 내부에서 고개를 들자, 아태재단의 상임고문이었던 이강래 전 의원은 ‘DJP 연합을 통해 호남 고립을 깨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DJP 연합이 본격화된 것은 1997년 10월 이후였다. 신한국당은 ‘야권 저격수’ 강삼재를 중심으로 DJ 비자금을 폭로했다. DJ는 ‘처조카인 이형택의 670억 원 은닉설’, ‘노태우의 20억 원+알파(α) 수수설’, ‘박철언의 200억 원 수수설’ 등에 시달렸다.
당시 정국은 극심한 혼돈에 빠졌다. DJ 지지자들은 신한국당 당사 폭파 위협까지 제기했다. 검찰은 그해 10월 20일 DJ 비자금 수사 카드를 꺼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걷던 YS가 이를 만류, DJ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그 사이 DJP는 단일화를 승부수로 띄웠다. DJP가 검찰이 수사 중단을 언급한 지 보름여 만인 11월 3일 내각제를 고리로 한 단일화에 합의한 것이다.
둘의 만남은 호남과 충청을 묶는 지역 연합을 뛰어넘는 상징성이 있었다. 여권 한 원로 인사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박정희 정권 2인자의 만남은 보수·중도층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DJ는 그해 대선에서 대전 45.0%를 비롯해 충남 48.3%, 충북 37.4% 등을 기록했다. 충청권 인사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대전 29.2%, 충남 23.5%, 충북 30.8%로 DJ보다 최대 15%p 뒤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일명 ‘16부작’의 드라마인 국민경선에서 승리한 노 전 대통령 지지도는 한때 60%를 돌파했지만 △삼형제(김홍일·김홍업·김홍걸) 비리 의혹에 휩싸인 DJ △반노(반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의 노무현 흔들기 △2002년 월드컵 바람을 타고 제3후보론으로 부상한 정몽준 등의 악재가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호남 3곳과 제주에서만 승리한 2002년 6·13 지방선거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태동의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일화 요구였으나, 속내는 ‘정몽준으로의 후보 교체’였다. 정몽준 측이 요구한 여론조사 룰을 전격 수용한 노 전 대통령은 극적으로 본선에 올랐고 그해 대선에서 48.9%를 기록,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46.6%)를 2.3%p 차로 이겼다.
현재 이재명 위기론 한가운데를 파고든 것도 후보 교체론이다. 강하진 않지만, 여권 일각에선 여전히 대선 플랜B로 ‘이낙연(전 민주당 대표)+조국(전 법무부 장관)’ 연합 카드를 요구하고 있다. 이 후보 지지도가 장기간 30%대 박스권에 갇히면서 ‘이재명으로는 안 된다’는 한계론도 부상했다. 이 후보 측 승부수였던 7인회의 백의종군의 효과가 없다는 점도 악재다.
이안 단일화를 포함한 ‘여권발 추가 카드’가 전격 부상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원장인 노웅래 의원은 1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단일화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결단만 하면 할 수 있다. 안 후보의 정치적 뿌리가 어디냐”라고 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이안 단일화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이안 단일화는 사실상 ‘영남 연합론’이다. 이 후보의 대구·경북(TK)과 안 후보의 부산·울산·경남(PK)을 묶는 지역 연합이다. 이 후보 약점인 호남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이념적으로는 이 후보의 보수와 안 후보의 중도·보수의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세대별로는 4050세대에 강점이 있는 이 후보와 2030세대에 소구력을 갖춘 안 후보의 만남이다. 
이안 연대는 영호남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이 후보의 약점인 중도·2030세대를 채울 보완재 카드에 가깝다. 여권 내부에선 송 대표를 필두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이근형 선대위 미래기획단장 등의 삼각편대가 이안 단일화를 위해 움직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한 뒤 나서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문제는 이안 단일화의 실현 가능성이다. 이안 단일화 성사의 전제조건은 ‘민주당 혁신’이다. 이 후보 측 7인회 백의종군으로 촉발한 여권발 정치쇄신은 지지부진한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학번) 용퇴로 사실상 동력이 꺼졌다. 안 후보가 여당과 힘을 합칠 명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진보진영에서 세력 교체론이 성공했던 사례는 ‘DJ정권 말 정풍운동’이 유일하다. 이는 정동영·천정배·신기남 전 의원이 추진한 동교동계 퇴진이 핵심이었다. 당시 정풍운동이 성공했던 이유는 레임덕에 시달린 DJ의 전폭적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국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DJ는 자신의 최측근이던 권노갑 퇴진을 핵심으로 하는 여권발 쇄신 운동에 힘을 보탰다.
역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여권발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지도 40%대를 유지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국정동력 확보를 위한 지렛대가 필요 없다. 86그룹 용퇴의 종착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이광재 민주당 의원,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으로 불똥이 튈 게 뻔한데,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리가 없다는 얘기다. 당시 정풍운동이 ‘권노갑 동교동계 vs 천신정’ 구도를 잡은 것과는 달리, 현재의 여권발 정치혁신은 구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김종인 움직임 변수로 부상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움직임도 변수다. 여권은 국민의힘에 팽을 당한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이 후보를 돕는다면 판이 바뀔 것”이라며 설 전후 강하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 후보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역량 있는 정치계의 어른이셔서 자주 연락드린다”고 김 전 위원장과 회동에 긍정적 사인을 보냈다. 송영길 대표는 1월 31일 오마이뉴스TV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최근 김종인 전 위원장을 한 번 만났다”고 했다.
그러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설 인사차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위원장과 안 후보는 정치권의 질긴 악연의 대명사로 꼽힌다. 김 전 위원장은 윤안 단일화에 대해 “안 후보 지지도가 18% 이상 안 오른다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보수 대연합이 최종 무산되면, 2022년판 DJP·노정 단일화 문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종인 매직’이 대선 단일화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월 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송 대표의 범여권 단일화에 대해 “착각은 자유”라고 일축했다.  

아이오와주, 마요네즈 다툼 끝에 친구 살해 남성 ‘종신형’

0
1급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크리스토퍼 얼배처 [해리슨 카운티 보안관실 제공. 트위터 게시물 캡처]

트럭으로 돌진…완전한 사망 위해 친구 몸 위로 ‘세 번’ 타격

마요네즈를 둘러싼 사소한 다툼 끝에 친구를 차로 치어 살해한 아이오와(Iowa) 주 남성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오늘(4일) AP 통신과 아이오와 현지 매체 디모인 레지스터에 따르면 법원은 크리스토퍼 얼배처(Kristofer Erlbacher, 29)의 1급 살인 혐의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우드바인(Woodbine)에 거주하는 얼배처는 2020년 12월 무어헤드(Moorhead)의 동네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동석한 친구 케일럽 솔버그(Caleb Solberg,30)의 음식에 마요네즈를 뿌렸다.

솔버그가 이 일로 화를 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주먹질이 오갔다.

격분한 얼배처는 솔버그와 다른 이들에게 복수 하겠다고 협박한 후 자신의 픽업트럭을 타고 먼저 주점을 떠났는데, 이 과정에서 솔버그의 이복 형인 크레이그 프라이어(Craig Pryor)의 차를 여러번 쾅쾅 부딪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날 밤 늦게 얼베처는 카페 바깥에 나와있던 솔버그를 향해 자신의 트럭을 질주해 들이받은 후, 그가 살아날 수 없도록 솔버그의 몸 위를 두 차례나 더 트럭을 몰고 지나가는 잔인함을 자행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살인을 저지른 후 알베처는 솔버그의 이복형 프라이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방금 네 동생을 죽였다” 라고 알렸다.

법정에서 얼베처는 솔버그를 죽일 의도는 없었으며 술에 취해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혐의를 2급 살인으로 낮춰줄 것을 호소했지만 그의 요청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2급 살인이 적용됐다면 얼베처는 50년으로 감형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술에 취한 얼베처가 솔버그의 음식에 마요네즈를 바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솔버그는 친구의 이런 무례한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몸싸움을 하게 됐다. 솔버그가 무어헤드의 술집에서 얼베처를 향해 먼저 주먹을 날렸을 때 그들의 언쟁은 격해졌다. 얼베처는 처음에 숀 존슨(Shaun Johnson)이라는 제3의 남자와 함께 주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솔버그와 주먹다짐이 있은 후 얼베처와 존슨은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주점을 떠나 10분 정도 운전을 한 뒤 한 카페에 들러 계속 술을 마셨다. 음주를 하는 동안 얼베처는 솔버그의 이복형제 크레이그 프라이어에게 전화를 걸어 “솔버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잠시 후 솔버그와 그의 이복형제 프라이어, 엘버처와 그의 친구 죤슨 등 네 명은 데이브스 올드 홈(Dave’s Old Home) 에서 만났고, 이곳에서 존슨과 솔버그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만취 상태였던 엘버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트럭을 몰아 솔버그를 향해 돌진했다.

트럭이 두 번째로 달려들기 직전 아직 살아있던 솔버그는 이복형제를 향해 부르짖었다.

두 번째 타격은 솔버그의 몸을 인도로 내동댕이 쳤고, 세 번째 타격까지 마친 후에야 얼베처는 자신의 살인 행위를 멈췄다.

이날 밤 얼베처는케일럽 솔버그를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크리스토퍼 얼베처의 친구 숀 존슨은 체포되지 않았다.

‘깐부’ 오영수의 인생 역전 드라마

0

78세까지 주목받지 못한 연기자로 단역 배우 전전

<오징어게임> 출연으로 첫 골든그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제공]

예측 밖의 골든글로브 수상자 –

해외에서 수상하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시상식들은 때때로 예측을 빗나가는 시상으로 충격과 신선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미국의 골든글로브는 ‘항상’ 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백인들만의 잔치였다.

회원 구성 자체가 백인 위주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여기에다 성차별 논란, 불투명한 재정 관리에 따른 부정부패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인 2022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이 보이콧까지 하는 싸늘함 속에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오영수, 이정재, 황동혁 감독 등 ‘오징어 게임’ 관계자들도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토록 견고한 ‘백인들의 아성’ 골든글로브에서 금년에는 모두의 예측이 빗겨간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그 ‘예측이 빗겨간’ 주인공은 그 동안 어떤 미디어도 골든글로브 수상자로 입에 올리지 않은 노배우 ‘오영수’였다.

한국 매체들은 제 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앞둔 하루 전 까지도, 연일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데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속의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에 대해 조명하거나 수상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매체는 없었다. 

‘오징어 게임’의 배우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성기훈 역의 이정재, 이정재가 사는 동네의 서울대 나온 수재 상우 역의 박해수, 이병헌이 맡은 인호의 동생 준호 역할의 위하준 등은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오영수는 ‘출연’으로 소개될 뿐이었다.

미디어에서는 물론 ‘오징어 게임’에서조차 오영수는 주인공도 아니었고, 그의 연기에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다. 78세가 되도록 배우 ‘오영수’는 한국 내에서 단 한 번도 주인공으로서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해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22년 1월 9일 오후 6시, LA 베벌리 힐튼 호텔(Hilton Hotel)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결과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의외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든 매체들이 목매어(?) 기다리던 남우주연상은 불발된 채 전혀 예상치 않았던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조연상이라고 해서 주연상보다 무게가 덜하거나 선정 과정이 덜 까다로운 건 결코 아니다. 

올해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에는 세 번째로 도전하는 ‘석세션’의 키에라 컬킨을 비롯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 마크 듀플라스, ‘테드 라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등 쟁쟁한 후보들이 자신들의 수상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을 제치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조차 생소한 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의 남우조연상을 차지한 것이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을 비롯 해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2020년 ‘기생충’, 2021년 ‘미나리’ 출연진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한국계 배우인 샌드라 오, 아콰피나가 연기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연기상 후보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백인 일색 골든글로브에서 빛나는 아시안 수상자 –

White 일색으로 수상자나 작품을 도배해버리는 골든글로브의 성향으로 미루어 봐도, 이번 79회 째 수상자나 수상작들의 결과도 그리 놀라운 건 아니다. 

드라마 부문의 결과를 보면, 남우주연상은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 여우주연상은 <비잉 더 리카르도>의 니콜 키드먼이 수상했고, 작품상을 수상한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의 코디 스밋 맥피가 남우조연상을  차지했다.

TV 드라마 여우주연상은 <포즈>의 MJ 로드리게즈, 남우주연상은 <석세션>의 제레미 스트롱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TV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는 <나의 직장 상사는 코미디언>의 진 스마트, 남우주연상은 <테드 레소>의 제이슨 서디키스, TV미니시리즈 영화에서는 여우주연상에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서 열연한 케이트 윈슬렛, 남우주연상은 <도프식>에서의 마이클 키튼이 수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TV부문에서 여우조연상에 <석세션>의 사라 스누크, 남우조연상에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이름이 올라있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

수상자들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번에도 골든글로브의 수상자들은 White, 백인 일색이다. 여기에 오영수의 남우조연상 수상은 한국 배우 최초의 골든글로브 수상자라는 의미를 넘어 백인일색 가운데 아시안이라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 관심사에 연일 수상자 물망에 올랐던 이정재는 아쉬운 좌절을 맛봐야 했고, 작품상 역시‘석세션’에 트로피를 넘겨줬다.

비록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도 한국 영화·드라마 초유의 기록이라는 평가다. 

비영어권 작품에는 유독 배타적인 골든글로브는 지난해까지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을 뒀다. 

이 때문에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21년 미국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는 작품상, 연기상 등의 후보에 오르지 못했고 ‘외국어 영화상’ 부문으로 분류됐다. 

지금껏 비영어권 작품은 후보에 조차 오른 적이 없었던 TV부문에서 오영수의 남우조연상 수상은 이런 골든글로브의 관행 속에서 더욱 값진 수상이요, 넷플릭스의 세계적 파급효과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겠다.

오영수는 누구인가? –

한국에서는 “배우 오영수가 누구야?” 하며 생소해 했을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사실 그의 경력을 살펴본다면 골든글로브가 제대로 배우를 보는 안목이 있구나 인정하게 될 것이다.

오영수는 1944년 10월 19일 경기 파주 출생이다.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형들을 모두 잃는 바람에 장남이 됐다. 

한국전쟁 중 6살 때 인민군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위해 힘들게 살아야 했다.  

그의 학력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학 졸업 후 1963년부터 극단 광장 단원으로 활동했고, 1965년 ‘갯마을’로 처음 스크린에 얼굴을 보였다. 

마흔을 넘긴 1987년 국립극단 단원이 되어 2010년까지 단원 생활을 했고, 지금도 연극 무대를 지켜오고 있다. 

스크린에서는 뜸하게 단역으로 출연해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연기력은 인정받아 수상 경력이 상당하다.

1968년 극단 광장의 ‘동거인’으로 데뷔한 이래 1979년 동아연극상에서 남자연기상수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수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 수상을 비롯,탤런트와 영화배우로 1년 평균 출연작이 4편 이상인 탄탄한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주로 노스님 역을 맡아 ‘스님 전담배우’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다. 하지만 이 스님 케릭터로 오영수는 SK 텔레콤의 광고 모델로 발탁될 수 있었다. 

2003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은 오영수를 골든글로브 수상자로 이끄는 매개체 역할을 한 작품이다.

사계절에 담긴 인생의 4계를 그린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오영수의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작품 구상 때부터 오영수를 오일남 역으로 낙점해 두었다 한다. 

황감독이 만든 케릭터 ‘오일남’ 이라는 이름도 ‘오영수’에서 떠올린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스님 역을 주로 맡다 보니 혹시 불교 신자일까 추측할 수 있지만, 오영수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인해 또 하나 알려진 이력은, 오영수가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것이다. 

월남전은 1964년 7월 18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한국군 32만 명이 참전한 전투로, 한국 역사상 첫 번째 해외 파병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오영수는 1966년 10월부터 1967년 11월까지 1년 1개월간 육군 9사단 백마무대 소속으로 파병되어 상병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때 파병됐던 상병 시절 오영수.

오영수의 이력서를 요약하면 아주 간단하다. 대학 졸업 후 극단에 몸담고 있으면서 영화나 드라마에 간간이 출연한 것, 한 마디로 연기만 평생 해온 외길 인생인 것이다. 

그렇게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은 안스러움과 함께, 하고싶은 일만 평생 해오다 결국엔 ‘큰 것’ 한방 터트렸으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 속의 오영수-

도대체 오영수가 어떤 연기를 보여 주었기에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됐을까 궁금증이 일어 ‘오징어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열공(?)하며 오영수의 연기를 눈여겨 보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드라마다.

게임장은 처음부터 게임 규칙을 설명해주는 커다란 인형 ‘영희’의 지시대로 움직임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총알 세례가 퍼부어지는 충격으로 공포감을 조성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끊임없이 흥미 진진하게 만든 원동력은 공포감과 반전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매번 게임마다 게임장 안의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감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남은 자들은 급반전 속에 예상 밖의 인물들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의 모습을,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마치 나의 모습인 양 간접 체험하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 오영수는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 중 가장 고령인 할아버지 오일남 역을 맡고 있다. 오일남은 자신을 배려해주는 성기훈(이정재 역)에게 같은 편인 ‘깐부’를 맺자고 제의한 뒤 서바이벌 게임장 안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불리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각종 게임을 운좋게 통과한 마지막 승자 성기훈(이정재 분)은 어느 날 한강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꽃장수를 통한 오일남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오징어게임의 심벌이 그려진 메모에는 <12월 24일 밤 11시 30분, 스카이 빌딩 7층으로 와달라>는 메시지에는 <‘깐부로부터’>라고 적혀있다.

찾아간 기훈의 눈 앞에 깐부 할아버지는 고급 병실에 첨단 의학 장비들이 부착된 채 병상에 누워있다. 

“당신, 누구야?”라고 소리치는 기훈에게 오일남은 대답한다. “나는 돈을 굴리는 사람이야”

“당신,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야? 오일남, 그건 당신 진짜 이름이야?”

“그래 내 이름이야. 오일남. 내 머릿속에 종양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옛날에 아내랑 아들과 함께 그런 골목길에 산 적도 있었지.”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사실은 재벌 노인인 오일남은 바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아직도 사람을 믿는 사람이기에 성기훈을 게임에서 살려준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한거지?”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사는게 재미가 없다는거야. 돈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뭘 사고 먹고 마셔도 전부 다 시시해져버려. 나의 고객들이 머리를 모았지. 뭘 하면 좀 재미가 있을까 하고”

생명이 꺼져가는 오일남은 빌딩 아래 보이는 걸인을 자정이 되기 전에 누군가 도와주면 기훈이 이기고, 아니면 내가 이기는 것이라며 마지막 내기를 건다.

결국 자정의 괘종시계가 울리기 전 누군가의 신고로 걸인은 경찰의 도움을 받는게 보이면서 기훈은 “내가 이겼어” 라고 말하지만, 노인은 결과를 알기 전 숨이 멈춰있다. 

‘오징어 게임’ 극중 이정재(왼쪽), 오영수[넷플릭스 제공]

성기훈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깔끔한 차림으로 딸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그러나 공항 전철에서 자신과 똑같이 딱지치기로 또 다른 오징어 게임 참가자를 낚고 있는 예전의 그 남자를 목격하게 된다. 

그냥 비행기에 올라 딸을 보러 가면 좋으련만, 그것은 주인공 성기훈의 케릭터가 아니다. 

“성기훈, 1974년 10월 31일. 잘 들어. 난 말이 아니야, 난 사람이야. 

그래서 난 용서가 안되. 너희들이 하는 짓이.”

결국 비행기 문앞에서 돌아서는 기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오징어 게임’ 마지막 9회는 끝난다. 시즌2를 예고하는 클로징이라 볼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성기훈이 그냥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 딸아이도 만나고, 아내와도 잘 되어 남은 돈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더라면, ‘오징어 게임’은 감동이 삭감된 채 흔한 해피앤딩 스토리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막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재미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쓰는 악인들을 응징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뒤로 하는 사람 ‘성기훈’의 케릭터는 이 드라마를 시즌2, 시즌3로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 생명이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니어들에게 힘을 주는 78세 노장의 만개 –

이번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은 오랜 세월 인고한 연기자에게 시대적 상황이 안겨준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코비드19으로 인해 실내에 들어앉게 된 전 세계 사람들이 ‘넷플릭스’라는 매체의 클릭 수를 높였고, 덕분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역시 전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싯점에서 문득 권투의 황제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말이 되새겨진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비유가 적절할 지 모르지만, 배우 오영수는 나비처럼 조용히 언제든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2022년 골든글로브를 향해 벌처럼 ‘톡’ 쏘아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온 것 같지만, 오영수는 늘 같은 자리에서 평생 동안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가 나이 78세가 되어서야 골든글로브에서 발견이 된 것이다. 오영수는 ‘준비된 배우’라는 얘기다. 

뒤늦게 만개한 오영수의 수상은 시니어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집념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일은 아무리 늦더라도 반드시 보답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을 노년층의 가슴에 지펴주고 있다. 

수상 소감이 전해주는 인간 오영수 –

연기 인생 58년 베테랑 배우 오영수가 남긴 수상 소감에서 그가 어떤 인생관을 갖고 있는 배우인지 알게 된다.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닌 ‘우리 속의 세계’ 입니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이라는 오영수의 소감에 문득 그의 가족이 궁금해진다.

데이트 할 무렵 은행원이던 아내는 연극 팬으로, 13살이나 나이 차이 나는 45세의 가난한 연극인을 처갓집에서 좋아할 리 없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1987년 오영수는 월급이 나오는 국립극단으로 자리를 옮겼고, 정년이 될 때까지 이 곳에서 자리를 지키게 된다. 노총각을 구제해준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도 출연하며 세간의 인기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배우 오영수, ‘오징어 게임’ 시즌1에서는 뇌종양으로 사망한 그를, 제작 예고되고 있는 시즌2에서는 어떻게 또 살려낼지 기다려진다. 

끝으로 모두에게 남긴 그의 덕담은, 요즘 사람들이 많이 듣고 싶어하고 많이 인사로 건네는 ‘부자 되시라’는 말이 아니라서 그 또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리디아 정 기자